[한잔합시다] SK 콜센터 관련사 임직원
“로봇 같은 친절함이 싫다는 고객도 있습니다”
“따르르릉~ 따르르릉~” “안녕하세요? SK 콜센터 000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누구나 한번쯤 이용해봤음직한 콜센터. 시시콜콜한 불만에서부터 굵직한 클레임을 털어놓는 고객 앞에 콜센터 직원들은 하루 종일 수화기를 손에서 놓지 못한다. 산업이 발달하면서 더욱 AS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회사의 얼굴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콜센터는 현재 공공기관을 비롯, 소비자와 직접적인 영향권에 있는 기업들은 모두 이러한 콜센터 운영에 매우 민감해 있는 것이 사실이다.
SK 그룹도 마찬가지. 국내 최대 이동통신 업체인 SK텔리콤을 비롯해, OK캐쉬백, SK생명, SK증권 등 고객의 소리를 들어야 할 부서에는 어김없이 콜센터의 상냥한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전해진다. 이번 호에서는 이러한 콜센터 현장에 있는 임직원을 만나 즐거운 술자리를 가져봤다.
참석자
SK텔레콤 서경수 센터장(44) 제이티(주) 소속. SK텔레콤 6년 재직. 2001년 입사.
SK증권 김인하 센터장(37) Priden 소속. 11년간 직장생활 하다 콜센터 2002년 입사.
OK캐쉬백 박형술 팀장(42) (주)인플러스 소속. SK 대덕기술원 총무파트 근무. 2001년 입사.
SK생명 윤희정 수퍼바이저(32) 2001년 생명보험사 통폐합 때 입사. 2002년 입사.
콜센터에 전화하려고 수화기를 드는 사람은 거의 모두 ‘불만이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얼마 전 모제과업체에서 제조한 과자에서 벌레가 나온 것을 발견한 네티즌은 그 사진을 인터넷에 올려 일파만파 파장을 일으킨 적이 있다. 그럴 경우, 회사 측에서는 어떻게 대처할까. 현재 제조물책임법이 실효돼 모든 소비자들은 구입한 제조물에 대해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상태에 있어 회사 측은 마냥 고객을 숙일 수밖에 없는 처지다. 결국 그 네티즌은 과자 한 박스를 선물로 받고 조용히 침묵했다.
이렇듯 홍보를 위해 수백억 원의 기업 이미지를 쌓아올려도 고객의 소리 하나로 일순간 기업의 좋은 이미지가 무너지는 것은 순간이다. 어찌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것에 속한다. 그러나 최대한 그것을 막아볼 수 있고 사전에 방지할 수 있는 곳이 있으니 그 곳이 바로 기업의 플라타너스 나무 존재로 여겨지는 ‘콜센터’다.
# 장면 1 “한달에 30명 퇴사하는 경우도 있어요”
김인하 센터장(이하 ‘김’) 저는 처음부터 콜센터 근무를 하리라곤 생각지 못했어요. 모회사 기획파트에서 11년간 직장생활을 하다가 우연히 콜센터로 입문했죠. 그러나 실제 근무를 하다보니 나름대로의 업무 채널을 확보하고 있는 것에 놀라고 또한 큰 보람을 느끼고 있어요.
서경수 센터장(이하 ‘서’) 저는 SK텔레콤에서 6년간 근무했어요. IMF때 명예퇴직을 한 후 콜센터에 입사하게 됐죠. 텔레콤 근무시 마케팅과 고객파트에서 근무를 했기 때문에 업무 메커니즘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어 많은 도움이 됐죠. 현재 SK 텔레콤은 전국에 총 11개의 콜센터를 운영 중인데 저희 회사가 그 중 하나라고 보시면 됩니다.
박형술 팀장(이하 ‘박’) 저는 SK 대덕기술원 총무부에서 근무했어요. 지난 93년부터 근무하다가 2000년 퇴직하고 입사하게 됐죠. 당시 우연찮게 점술원에 가서 제 미래에 대해 들었는데, ‘전화’와 ‘인터넷’ 관련업에 종사케 된다는 얘기였어요. 지금 생각하면 퍽 신기하죠.
모두 와~ 신기하네요. 거기 어디예요?
박 어딘지 정확히 기억나질 않아요. 대전 어디였는데…….
윤희정 수퍼바이저(이하 ‘윤’) 저는 원래 생명보험사에 근무했어요. 그러다 2001년 관련사들이 통합되면서 희망퇴직으로 퇴사했다가 SK생명에 입사케 됐죠. 정규직은 아니지만 큰 보람을 느낍니다. 처음 들어올 때 솔직히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왔지만, 지금은 매우 힘든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지난 2002년 업무를 시작해 지금 수퍼바이저에 오르고 나니 전화 받는 것이 오히려 더 편하다는 걸 느껴요.(웃음)
!!여기서 잠깐, 콜센터 운영에 관한 조언
공공기업 및 대기업의 콜센터는 보통 수백 명의 직원을 둔 아웃소싱 업체가 그 업무를 전담한다. 1개실에 15~20여명의 상담원이 근무하며, 1개 회사에 20여개 안팎의 상담실을 두는 것이 보통이다. 1명의 상담원은 하루 120통의 전화 받는 것이 상례이나, 종종 150여 통 넘게 상담을 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서 보통 회식을 하게 되면요. 두 달은 걸립니다. 회식을 안 할 수 없어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니거든요. 저희 회사 같은 경우는 23개 상담실이 있어 개별적인 회식을 도모하게 되면 보통 두 달은 걸리죠. 거의 매일 술을 먹는다고 보시면 되요.
박 술을 잘해야 합니다. 콜센터의 애환을 풀어줘야 하거든요. 그것도 업무의 연장선상에 있는 거죠. 항상 아침부터 저녁까지 같은 목소리, 같은 억양, 같은 친절도로 고객을 응대해야 하니까 여러 가지 애로 상황이 발생하곤 하죠.
김 저흰 24시간 운영체제예요. 4개조로 나뉘어 운영되고 있지요.
서 저희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근무랍니다. 하루 종일 의자에 앉아 전화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니 쉽지 않은 업무죠. 그러다 보니 스트레스를 못 이기고 퇴사하는 직원들이 많아요. 이직률이 높은 것이 가장 큰 애로사항예요. 많게는 한달에 20~30명이 한번에 그만두는 경우도 있죠.
# 장면 2. “단체 활동에 어려움 많죠”
윤 여직원들이 많다보니 특성이 있어요. 쉬는 날, 회사에서 산행이라도 가자고 하면 다들 가지 않으려고 하죠. 남직원들이 많은 회사와는 달리, 단체 행동이 어렵다는 건 이해해 주셔야 합니다. 저흰 기혼자가 50%를 넘거든요. 워크숍을 하고 싶어도 기혼자가 많아 부담되죠.
김 하나가 되는 게 중요한데 그렇지 못해 속상할 때가 많죠. 그래서 다함께 동참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전체 인원 중 70%만 참석해도 성공하는 것이라 여겨집니다.
박 어떤 조직이든 100% 참석은 어렵죠. 얼마 전 저희 회사에서 영화 ‘트로이’를 단체 관람했는데, 큰 호응을 얻었어요. 단합대회 측면에서 이러한 것을 자주 마련하곤 하죠.
김 전 그렇게 생각해요. 콜센터 특성상, 대인관계가 매우 미약해 질 수 있거든요. 그래서 그러한 단합대회나 대외적인 행사에 꼭 참석을 당부하고 싶은 거죠.
박 맞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저희 회사 같은 경우는 팀별 회식을 유도하고 있죠. 팀의 리더에게 전권을 줍니다.
어느 직장인들 애환이 없을쏘냐. 그러나 콜센터의 특성상 그들의 스트레스는 우리들의 것과 차원이 다를 수 있다. 일선에서 영업을 하는 세일즈맨들의 애환과 비슷하다고 하면 억지일까. 시끄러운 도시 한복판의 버스 경적 소리에서부터 저 깊은 산골의 조용한 귀뚜라미 울음소리까지 모두 들어야 하는 곳이 바로 콜센터다. 항상 그들은 웃어야 하고 항상 친절해야 한다. 가끔 자신이 로봇처럼 느껴지기도 하겠지만.
윤 어떤 고객은 그러더라고요. 로봇처럼 말하지 말고 자기 목소리를 내라고. 오히려 더 친절해 보이려고 하는 모습이 부담된다고. 한편으론 수긍이 가더군요.
박 맞아요. 그래서 제가 낸 아이디어지만 앞으로 상담원들에게 사투리를 교육시켜 알아듣기 힘든 사투리는 그 지역 특색에 맞춰 고객 응대를 할 계획예요.
서 OK캐쉬백 같은 경우는 전국의 고객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가능할 것 같군요. 저희 수도권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그건 어렵지요.
김 만약 주가가 하락됐을 때 저희 같은 경우는 참 암담해요. 무조건 친절할 수도 없거든요. ‘고객님, 주가 하락 되셨군요.’라는 운을 떼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를 때가 있단 거죠.
모두 하하하.
윤 과거 이러한 콜센터의 서비스가 정착되지 않았을 때는 기계음처럼 친절한 목소리만 내도 고객들은 매우 흡족해 했어요. 그러나 지금은 다르죠. 기계적인 음이 싫단 말씀을 자주하세요.
#장면 3. “여자 필요 없어. 남자 바꿔”
윤 가장 큰 애로사항이요? 무조건 ‘남자 바꿔’라고 반말하시는 고객이 있죠. 여자가 뭘 아냐는 식의 안하무인격인 고객들은 블랙리스트에 올리죠.(웃음)
박 어떤 경우에는 특정 인물만 찾는 경우가 있어요. 어떠한 경우라도 그 사람만 찾죠. 거의 모든 직원들이 여성이라 연정을 품고 그러는 경우고 있고요.
이야기가 콜센터의 애로사항에 대한 것으로 시작해 끝이 날 듯 싶었다. 슬퍼도 웃어야 하는 영화 ‘배트맨’의 조커 같은 생각이 들었다. 피에로의 웃음 뒤에 감춰진 슬픔이 있는 것처럼. 술술 풀어내는 이야기보따리는 어느새 시간을 10시로 맞춰놓기 시작했다. 이야기 막바지에 SK 그룹과의 관계에 대해 조심스레 물었다.
박 많은 부분 지원을 받아요. 해외 연수도 시켜주시고, 각종 미팅이나 모임에도 참석하라 권해주시고. 모두 고마울 따름이죠. 그러나 가끔 섭섭할 때도 있죠. 갑을관계에 있는 회사들의 경우 이러한 불만 하나쯤은 다 있는 것이잖아요. 예를 들면 본사에서 추진하는 각종 이벤트나 행사의 구체적인 협의가 사실상 이뤄지지 않아 콜센터가 거의 모든 뒤처리 감당을 한다는 것이죠. 본사의 CS 담당이나 마케팅 부서의 파워가 강해져야 한다고 믿습니다. 고객 우대의 시대, 고객 감동의 시대 아니겠습니까.
서 직접적인 마찰은 없어요. 하지만 고객 센터의 볼륨을 어느 정도 생각해 줘야 한다는 거죠. 한편으로는 본사도 마케팅을 위해서 클레임이 걸려도 각종 행사에 대해 ‘푸시’를 가하는 경우가 있긴 해요. 그러나 그러한 것들이 모두 결국 콜센터의 애환으로 남는다는 것이죠.
박 ‘상담을 잘한다’ ‘역시 OK SK다’라는 소리를 들을 때면 하늘을 나는 것 같죠. 그러나 그러한 칭찬은 매우 인색합니다.
윤 여성은 물리적으로 몸 상태가 안 좋을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도 항상 웃어야 하며 항상 스탠바이 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 긴장되는 것이죠.
서 아무리 어렵고 힘든 일이 있어도 무조건 고객 우선 이예요. 법적인 어떠한 조처를 취할 수 있다고 해도 취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죠. 수백억 원을 들여 기업 이미지를 좋게 쌓아올렸는데, 그러한 법적 소송 하나로 먹칠 할 순 없잖아요.
# 장면 4. 에필로그
매번 한잔합시다를 진행하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지금까지 거의 모든 참여자들의 성(姓)이 달랐다. 그래서 인물 식별에 많은 도움이 됐다. 이름은 곧 그 사람의 얼굴이다. 성만으로 그 사람을 판단할 순 없다. 그러나 식별은 된다. 대화를 나눠보지 않고 어찌 그 사람을 알까.
콜센터 임직원들은 사람 대하는 방법이나 인물 판단에 매우 민감하며 빠르게 판단할 수 있다고 한다. 몇 마디만 나눠보면 대략 어떠한 사람인지 안다는 얘기다. 하루 150여명과 이야기를 한다고 하니, 그럴 만도 하다. 거의 모든 인물 캐릭터에 대해 알고 있을 법도 하다.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 많은 인물들이 나고 죽는다. 모두가 같을 수 없는 인물들이다.
이제 콜센터에 전화하기 전, 이것만은 명심해 보자. 그들도 나의 형제자매이며 언니누나라는 것을. 콜센터에 전화해 욕을 해도 그들은 웃으며 친절하게 받아준다는 것을 알기에 더 욕을 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어서 이 책을 덮으시라. 그들은 스트레스 해소용 기계가 아니다.
글 원창연(자유기고가)
BOX
에피소드 1. 2002 한일월드컵 한국전이 있는 날, 콜센터에 전화가 왔을까?
정답은 ‘전화가 왔다’ 이다. 당시 고객을 위해 콜센터는 1개실 정도 운영했다고 한다. 모두 축구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실제 전화도 몇 통 걸려왔다고 한다. 제품에 대한 불만을 잔뜩 품고. 그는 분명 귀화한 외국인이거나 야구광일 지도.
에피소드 2. 스토커가 있을까?
스토커가 있다. 영화 ‘스크림’에서 자택 근무하는 콜센터 직원인 주인공 시드니에게 접근하는 남자도 바로 스토커다. 스토커는 의외로 많다. 그렇다고 정신 착란, 정신 분열이라고 단정 지을 수도 없다. 참으로 그들은 괴롭다. 특정인에게 계속해서 전화를 거는 사람도 있고, 이메일을 수백 통씩 회사에 보내는 사람도 있다. 심지어 특정 상담원 옆 자리에 누가 앉아 있으며 무슨 옷을 입고 있고, 당신의 집에 어제 어떠한 우편물이 도달했는지까지 안다고 한다면 소름 돋지 않을까? 결국 그것은 상담원의 몫으로 남는다.
에피소드 3. 무조건 욕을 한다?
상담을 무조건 욕으로 시작하는 사람도 있다. 급한 상황인 가운데 결정적으로 제품이 말을 듣지 않았을 경우, 혹은 클레임을 걸었는데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경우에 발생할 수 있으나 아무 이유 없이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욕을 하는 고객도 있다고 한다. 대체로 입에 담지 못할 욕들이다. 그들은 상상외로 멀쩡한 신사복에 무스로 가르마를 넘긴 젠틀맨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정적인 건 고객이 아무리 욕을 해도 전화를 끊을 수 없다는 데 있다. 마음은 굴뚝같지만 끊을 수 없다. 그것이 콜센터다.
에피소드 4. 콜센터 직원의 외출
직업병이라면 어떤 음식점을 방문하거나 제품을 구입했을 때 예사롭지 않은 눈길로 그것을 본다는 것이다. 더 좋은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거나, 더 좋은 마케팅 방법을 고안해 내 생활에 많은 보탬이 된다. 난청 등 또 다른 직업병으로 소음 많은 곳을 피하기도 하지만, 그들은 훗날 어떠한 일을 해도 이러한 서비스 정신으로 무장돼 있다면 어떠한 굴곡도 이겨낼 것이라 자신하고 있다.
에피소드 5. 180원 적립하려고 500원 아끼지 않는 고객
어느 고객은 OK 캐쉬백 180원이 적립되지 않아 콜센터에 전화를 했다. 그러나 콜센터에서는 180원 적립하려면 팩스로 신분증을 보내줘야 한다고 했다. 그 고객은 가정주부였던가 보다. 집에 팩스가 없었던 것. 180원 적립하려고 그 고객은 결국 인근 문방구에서 500원을 주고 팩스를 전송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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