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아프지 않다
매번 같은 단어를 천년고목에 새긴다면
거울에 비친 자화상에 대한 극도의 무성의다.
그저 새벽녁 찬바람 부는 중앙차로 버스정류장에
홀로 서 있는 그런 외로움 쯤이라고, 말해두고 싶다.
깨끗하게 비워진 쓰레기통 옆에 홀로 떨어진
담배꽁초같은 인생사 아니겠는가.
누구를 탓하랴.
무엇이 옳은 것이지 분간도 가지 않을 만큼
안개 속 無情함이 빈번한 도시에 살고 있는
배 곯은 참새쯤으로 여겨야지.
이제 갈 곳은 정해졌다.
달콤한 칵테일의 유혹도 아니고
시뻘건 고추장의 속쓰림도 아니며
구한말 마돈나를 유혹했던 이상화의 침실도 아니다.
거북이가 느리다는 편견에 사로잡혀
낮잠으로 놓친 토끼의 이상향은
어쩌면,
펄럭이는 심장 속에 감춰진
진주 한 알일 지도 모르니까.
사실 아프지 않다.
2005.12.21. 고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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