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속에 설계도를 충분히 그리고, 사전 준비 철저히 해야”
어느 취미 생활에나 지름신은 있다. 캠핑 장비도 마찬가지다. 기성 제품을 구입하고자해도 특정 브랜드의 제품일 경우, 그 가격이 매우 고가라 망설여지기 일쑤다. 이런 때 일수록 드는 생각 하나는 “내가 만들어버릴까?”라는 것. 실제 이를 행동으로 옮긴 캠퍼가 있어 멀리 부산까지 다녀왔다.
글·사진 원창연 기자
재료비 8만 원... 2개월 만에 완성
“2006년 6월 경 어느 날 마누라가 캠핑카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안 그래도 어디 놀러 다니기 좋아하는 나로서 귀가 번쩍 하는 이야기였다. 2006년 7월말부터 오토캠핑을 시작했으니 이제 2년 된 건가. 처음에는 자동텐트에 이불과 아이스박스도 구입하고, 의자와 테이블도 샀으며, 타프도 질렀다. 지금까지 대략 40여 회 캠핑을 다녔다. 이제 제법 연륜도 쌓였다고 봐야 하나. 내가 만든 장비를 갖고 싶다.”
2008년 11월 어느 날 쓰인 정기환 씨의 일기다. 처음 캠핑을 시작하는 사람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설렘과 흥분으로 장비를 구입하고, 구입할 장비를 위해 돈을 모으던 시절. 이제는 장비의 길고 짧음을 구분할 줄 알며, 직접 만드는 경지에까지 이르렀다.
IGT(Iron Grill Table)라 일컫는 그릴용 테이블은 사실상 일본 S사에서 독점 공급하다시피 한다. 독점 공급이다 보니 가격은 당연히 비싸고 그것 하나 구입해 캠프장에서 도란도란 고기를 구워먹는 로망을 누구나 갖기 마련이다. 테이블에 그릴이 달려 나왔으니 어찌 편하지 않겠는가.
사실 IGT 자작은 많은 캠퍼들이 도전한다. 정씨도 그 중 한 명이겠지만 그가 만든 IGT의 견고함은 다른 것보다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래서 추천받은 일이겠지만.
정씨의 IGT는 지난해 12월 말 완성됐다. 그 후 캠프장은 물론이거니와 가정에서도 가족끼리 모여 고기도 굽는다. 그 만큼 실용성과 견고함을 두루 지닌 제품으로 시가로 따지자면 대략 40만 원 안팎의 장비가 되겠다.
이 제품을 만드는데 소요된 비용은 약 8만 원 선. 약 2개월 만에 완성했지만 시행착오가 너무 많았다.
“대략 3번은 실패한 것 같아요. 그 실패비용만 따지면 신제품으로 하나 구입하고도 남았을지 모르죠. 그래도 만드는 재미가 있잖아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나의 장비라서 일까요?”
향후 캠핑카 제작 꿈꿔
푸근한 웃음을 지어보이는 정씨는 이전에도 작은 테이블은 5개 정도 만들었다. 그러나 이번에 만든 것만큼 실용적이지 못했다. 이번에 만든 IGT는 6명이 둘러앉을 정도로 크다.
메인 상판 1개와 날개 테이블 2개, 보조 상판 1개, 다리 12개로 이뤄진 그의 IGT는 그릴이 아닌 스토브 2개를 넣을 수 있는 스테인리스 판으로 제작했다. 알루미늄 프로파일로 만든 다리 12개는 좌식과 입식 모두 소화할 수 있게 길이 조절이 가능하다. 스토브가 쏙 들어가는 모양새가 시중 기성제품과 견주어도 손색없을 정도로 정교하다. 설계도에서부터 직접 부품을 구입하고 제작해 나간 솜씨가 아마추어 같진 않다.
“우선 여러 부품이 필요한데, 가장 중요한 알루미늄 프로파일(Aluminium Profile)을 이용해 프레임을 만드는 것입니다. 상판 나무는 친구에게 얻은 대나무 블라인드를 잘라 사용했어요. 브래킷들은 거래처에 부탁해서 만들었고요.”
향후 그의 꿈은 캠핑카 제작이다. 3인승 승합차 밴을 구입해 뒷부분에 침실과 간이부엌을 만드는 데 최근 열정을 쏟고 있다. 제작기간은 약 2개월이면 족하단다. 이쯤 되면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자작을 원하는 캠퍼들에게 살짝 조언 한 마디 할 만해 보인다.
“우선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해요. 저도 사전에 준비하지 않고 얼렁뚱땅 만들어내느라 실패를 3번이나 했어요. 처음부터 다시 만드는 일을 반복한 셈이죠. 설계도부터 머릿속에 끊임없이 구상해야 합니다. 또 하나, 남들이 만든 것과 기성 제품을 많이 봐야 합니다. 특히 기존 자작한 선배들의 조언도 필수겠지요.”
<정기환 씨의 IGT 제작 단계>
재료: 알루미늄 프로파일, 나무블라인드, 브래킷(Bracket), 스테인리스 판(두께 2mm), 나사 등
▲1단계
설계도를 그린다. 설계도는 모든 자작의 기본이다. 각종 재료에 대한 기본 상식으로 재료 구입 및 제작을 감안해 그린다. 자작나무 상판과 알루미늄 프로파일 프레임, 다리, 보조테이블, 경첩으로 접을 수 있도록 부착하는 날개테이블 부분 등 세부적인 디테일 컷이 필요하다. 스토브와 연결하는 부분에 대한 스케치도 그린다. 스테인리스 가공은 레이저 절단기를 이용해야 하며 프레임 연결용 브래킷에 대한 내용도 점검한다. 상판 재질은 스테인리스304 1.5t Plate를 사용했다.
▲2단계
설계도가 완성되면 설계에 맞는 부품을 구입한다. 날개테이블용 경첨과 다리부착용 브래킷, 높이 조절용 발판과 프레임 스토브 연결판 및 상판 부착용 받침대, 보조테이블 연결용 볼트와 너트 등 구입할 재료가 많다. 다리 제작에 필요한 프로파일이 적당치 않으면 나무로 제작해도 된다. 크기는 약 직경 30mm이며, 길이는 250mm와 280mm 두 종류를 사용해 연결하면 좋다.
▲3단계
부품이 준비되면 제작에 들어간다. 우선 알루미늄 프로파일을 갖고 상판 제작을 해야 한다. 테이블에 사용된 나무는 못 쓰는 블라인드를 활용했다. 블라인드 대신 강화마루를 사용해도 좋다. 블라인드는 얇아 여러 겹 겹쳐 제작하는 번거로움이 생긴다. 스토브 연결용 스테인리스 판은 레이저 가공을 해야 한다. 일반 가정집에서는 불가능하다. 약 1주일가량 소요되며, 일정의 경비가 지출될 것이다.
스테인리스 상판 레이저 가공이 끝날 때를 기다려 프레임 볼트 구멍을 만들고 보조테이블에 연결할 볼트 부작 작업을 끝내놓는다.
▲4단계
이제 완성 단계다. 모든 부품과 연결 부품이 제작되면 서로 연결만 해주면 된다. 다리는 상판과 연결하고 브래킷을 상판과 연결해 끼워 넣는다. 사포질로 마무리하면 끝이다. 정씨의 첫 작품은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스토브 사이즈가 맞지 않아 다시 제작해야만 했다.
# 본 기사는 매거진 <오토캠핑> 5+6월호에 게재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