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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태극기 휘날리며

불탄고구마 2009. 12. 21. 20:21
태극기 휘날리며를 보고.

이 영화를 보고 그 감흥을 놓칠 수 없어 빠른 시일내에 평론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으나 그렇지 못해 아쉽다. 그러나, 아직 날아가지 않은 감흥 몇개를 쥐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그 쥐고 있는 몇개의 감흥 중의 가장 크게 가슴에 새긴 것은 역시 마지막 장면이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포맷이 대체로 비슷했으나, 그것은 제작비 차원을 떠나 민족적 감성면에서 절대 비교할 수 없는 장면이었다.

동생이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 같기도 하다. 6.25 전쟁이라는 것을 겪어보지도 못했고, 그 이대올로기도 가슴에 팍팍 와닿지 않는 상황에서 그 감정을 100% 이해한다는 것은 어찌보면 실향민들에게는 '기분 나쁜 호평'으로 들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난 끓어오르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자막이 올라가는 데도 난 일어서질 못했다. 극장 밖을 나와서도 난 걷지 못했다.

장동건과 원빈. 그리고 주변 인물들. '실미도'가 1000만 관객 어쩌네 하면서 31명의 출연진 모두가 주연급이라 성공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명필름 심재명 대표는 이에 대해 "'원맨 히어로'였다면 실패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난 실미도와 이 영화의 비교를 거부한다. 비교가 될 수 없다. 우위를 점칠 수 없다는 얘기다. 다른 감정과 다른 느낌으로 봐야 한다. 관객수가 이 영화들의 장단을 가늠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줄거리는 나열치 않으련다. 6.25 전쟁은 초등학생때부터 귀에 딱지가 붙도록 들었고, '반공'의 개념도 이제는 조금 희석되긴 했지만 그래도 머리 한켠에 굳건히 자리잡고 있긴 마찬가지다. 예비군 훈련을 갈 때마다 느끼곤 하니까.

런닝타임 2시 20분가량. 난 그 시간 동안 진정 전쟁의 참혹함을 느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 전반 20여분과 '씬 레드라인'에서 느꼈던 빗발치는 총탄이란 단어도 이미 기억하고 있던 실정이었기 때문에 새롭진 않았다. 그러나, 대한민국 영화에서도 '할 수 있다'라는 것을 보여줬다.

예전 '배달의 기수'에서 보았던 '딱총' 수준의 소리는 없다. 지금은 그 소리를 탄피가 넘실대는 전쟁터의 흙구덩이와 포탄 소리가 대신하고 있다. 배에서 구더기가 기어가며 팔이 잘려나가는 장면도 인상 깊다. 워낙 잔인한 영화가 많은 시대인지라 그것을 보고, 눈 감을 사람이 몇 있겠는가마는 그래도 퍽 발전된 한국 영화 제작의 모습이라 대견스럽기까지 하다.

다만 아쉬운 점은, 3번 보여지는 전쟁씬을 보다 '와이즈'로 잡았으면 하는 바람이 그것이다. 사실감을 더하기 위해 그랬는지 모르지만 '정신없음'으로 대변되는 그 전쟁씬은 다소 어지럽다. 눈알 돌리기 바쁘단 얘기다.

삭막한 영화가 되지 않기 위해 이은주와의 키스씬을 넣었다는 강제규 감독의 말처럼 이 영화에 '전쟁'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은주가 죽음을 당할 때의 장면은 '쉬리'의 김윤진이 죽을 때의 모습과 흡사해 보인다. 서서히 쓰러져가는 모습. 모두 숨죽이고 그 장면에 몰입한다.

난 이 영화가 퍽 잘 될 것이라 여겨진다. 천만 관객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8.15 광복절이나 매년 6월 25일에 특별 영화로 TV에서 상영되어질 것쯤으로 여긴다면 이런 희망은 갖지도 않았을 것이다.

블랙버스터가 영화의 전부라고 말하고 싶진 않다. 소자본 영화도 자리매김해야 한국영화의 극장 점유율이 100% 가까이 다가갈 것이다. 전세계 통틀어 봐도 유례가 없는 대한민국 영화판의 현실. 멋지다. 박수쳐 주고 싶다.

장동건의 연기는 신들린 듯 하다. 원빈은 여전히 이를 악물고 대사를 친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설경구, 최민식 등 성격파 배우들은 모두 스크린에서 미친 듯한 모습으로 분하는 것 같다는. 그래서 그들을 '최고의 배우'라고 하는 듯 하다.

그러나,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장애인의 역할을 제대로 소화해내거나, 미치광이의 눈빛 연기를 잘해냈을 때 우리는 "아 연기 많이 늘었네" "연기 좋네"라고 한다. 과연 그것만 두고 연기력 평가를 할 수 있을까. 한순간의 눈빛 연기가 아닌 영화의 줄기를 잡고 흐름을 타며, 호흡이 끊어지지 않고 초반부터 후반까지 일관된 눈빛을 보여주거나 영화에 몰입하는 배우, 그가 바로 진정한 배우가 아닐까.

그들을 위해 우리는 7천원을 들여 극장을 찾아줘야 하지 않을까.

얘기가 빗나갔지만 장동건의 앞날을 위해 몇마디 지껄여봤다. 참 좋은 영화다. 잘 된 영화고. 당분간 코미디 영화만 보겠다는 다짐을 하게 만든 영화다.

★★★★★
 

 


 

 

2004년 과거 블로그에 올렸던 영화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