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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VD방 가는 연인이 부럽다

불탄고구마 2009. 12. 18. 12:27

  

 DVD방 가는 연인이 부럽다
‘뽀뽀’를 원한다면 소음없는 잔잔한 외국영화를 고르고
이제 시작한 커플이라면 눈치보지 말고 마음껏 다녀라


‘엉덩이가 예쁜 여자’ 정선경이 열연했던 영화 ‘너에게 나를 보낸다’. 내가 이 영화를 기억하는 이유는 중학생 때 처음으로 비디오방에서 본 영화이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비디오방의 다른 기능(?)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그냥 당시 파격적이라 홍보하던 영화를 보고 싶어 갔을 뿐이었다. 그곳이 단순히 영화만 보는 곳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뒤였다.


고등학생이 되자 ‘누구는 비디오방에서 여자친구와 뽀뽀를 했다더라’하는 영웅(?)들의 무용담이 들려왔다. 친구에게 매점에서 라면까지 접대하며 들었던 이야기는 이렇다. 비디오방에 가서 여자친구랑 뽀뽀를 하고 싶을 때 단순히 러닝타임 긴 영화만 생각을 하는데 사실 시간만큼 ‘장르’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여기 4개의 장르가 있다. 올 크리스마스에 여자친구와 차마 MT(?) 못 가는 남성들에게 추천하는 DVD방 스타일 영화장르는 다음 중 무엇일까? ①최신 코미디 영화 ②섹시 에로 영화 ③잔잔한 외국 영화 ④깜짝 공포영화


정말 보고 싶은 영화를 보러 갔다면 모르겠지만 크리스마스라고 분위기를 잡거나, 용기 있게 뽀뽀라도 시도하고 싶다면 일단 한국 영화보다는 외국 영화를 추천한다. 우리나라 영화는 장르를 불문하고 뽀뽀를 하다가도 그 내용이 너무 잘 들려 ‘열정적 몰입(?)’이 힘들다. 또 애니메이션의 경우는 러닝타임이 너무 짧다. 최신 코미디 영화는 너무 재미있어 타이밍을 놓칠 수 있고, 에로 영화는 고르는 순간 의도가 들통나 여자친구의 방어모드가 작동된다. 참고로 영상을 보면서 흥분하는 건 당신이지 여자는 영상만 본다고 아무 때나 막 흥분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아두었으면 한다. 공포영화는 뭐만 하려고 하면 비명 지르고, 깜짝깜짝 놀라 별로다.

 
가장 좋은 장르는 너무 큰 소음 없이 잔잔한 외국영화다. 적당히 이름이 알려져서 고르더라도 의심의 여지가 별로 없으며, 또 보다가 스킨십을 하더라도 무슨 소리인지 내용이 안 들리고 음악이 잔잔하게 자주 나오기 때문에 신경도 덜 쓰인다. 결정적으로 꼭 다 보지 못하더라도 큰 아쉬움이 남거나 하지도 않는다.


나도 와이프와 다니던 곳임에도, 결혼하고 나니까 DVD방 다니는 연인들이 부럽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는데 연애 초반의 그 설렘에 괜스레 질투가 난다. 그러나 이제 막 시작하는 커플들이여, 남들 신경 쓸 것 없다. 연애는 청춘의 특권이고 지금이 지나면 심장이 무뎌져 그런 가슴 뛰는 연애를 하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눈치보지 말고 마음껏 다닐 수 있을 때 DVD방을 다녀라. 어차피 시간 좀 더 지나면 가라고 해도 돈 아까워서 안 가게 될 날이 곧 온다.


마지막으로 선수들이 DVD방에서 자주 보는 영화 리스트를 최초로 공개하니 도움이 되기 바란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211분), ‘타이타닉’(195분), ‘킹콩’(186분), ‘알렉산더’(175분), ‘오스트레일리아’(166분) 등이다.


이명길 듀오 대표연애강사


출처: 세계일보. 2009.1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