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VD방 가는 연인이 부럽다
DVD방 가는 연인이 부럽다
‘뽀뽀’를 원한다면 소음없는 잔잔한 외국영화를 고르고
이제 시작한 커플이라면 눈치보지 말고 마음껏 다녀라
‘엉덩이가 예쁜 여자’ 정선경이 열연했던 영화 ‘너에게 나를 보낸다’. 내가 이 영화를 기억하는 이유는 중학생 때 처음으로 비디오방에서 본 영화이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비디오방의 다른 기능(?)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그냥 당시 파격적이라 홍보하던 영화를 보고 싶어 갔을 뿐이었다. 그곳이 단순히 영화만 보는 곳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뒤였다.
고등학생이 되자 ‘누구는 비디오방에서 여자친구와 뽀뽀를 했다더라’하는 영웅(?)들의 무용담이 들려왔다. 친구에게 매점에서 라면까지 접대하며 들었던 이야기는 이렇다. 비디오방에 가서 여자친구랑 뽀뽀를 하고 싶을 때 단순히 러닝타임 긴 영화만 생각을 하는데 사실 시간만큼 ‘장르’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여기 4개의 장르가 있다. 올 크리스마스에 여자친구와 차마 MT(?) 못 가는 남성들에게 추천하는 DVD방 스타일 영화장르는 다음 중 무엇일까? ①최신 코미디 영화 ②섹시 에로 영화 ③잔잔한 외국 영화 ④깜짝 공포영화
정말 보고 싶은 영화를 보러 갔다면 모르겠지만 크리스마스라고 분위기를 잡거나, 용기 있게 뽀뽀라도 시도하고 싶다면 일단 한국 영화보다는 외국 영화를 추천한다. 우리나라 영화는 장르를 불문하고 뽀뽀를 하다가도 그 내용이 너무 잘 들려 ‘열정적 몰입(?)’이 힘들다. 또 애니메이션의 경우는 러닝타임이 너무 짧다. 최신 코미디 영화는 너무 재미있어 타이밍을 놓칠 수 있고, 에로 영화는 고르는 순간 의도가 들통나 여자친구의 방어모드가 작동된다. 참고로 영상을 보면서 흥분하는 건 당신이지 여자는 영상만 본다고 아무 때나 막 흥분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아두었으면 한다. 공포영화는 뭐만 하려고 하면 비명 지르고, 깜짝깜짝 놀라 별로다.
가장 좋은 장르는 너무 큰 소음 없이 잔잔한 외국영화다. 적당히 이름이 알려져서 고르더라도 의심의 여지가 별로 없으며, 또 보다가 스킨십을 하더라도 무슨 소리인지 내용이 안 들리고 음악이 잔잔하게 자주 나오기 때문에 신경도 덜 쓰인다. 결정적으로 꼭 다 보지 못하더라도 큰 아쉬움이 남거나 하지도 않는다.
나도 와이프와 다니던 곳임에도, 결혼하고 나니까 DVD방 다니는 연인들이 부럽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는데 연애 초반의 그 설렘에 괜스레 질투가 난다. 그러나 이제 막 시작하는 커플들이여, 남들 신경 쓸 것 없다. 연애는 청춘의 특권이고 지금이 지나면 심장이 무뎌져 그런 가슴 뛰는 연애를 하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눈치보지 말고 마음껏 다닐 수 있을 때 DVD방을 다녀라. 어차피 시간 좀 더 지나면 가라고 해도 돈 아까워서 안 가게 될 날이 곧 온다.
마지막으로 선수들이 DVD방에서 자주 보는 영화 리스트를 최초로 공개하니 도움이 되기 바란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211분), ‘타이타닉’(195분), ‘킹콩’(186분), ‘알렉산더’(175분), ‘오스트레일리아’(166분) 등이다.
이명길 듀오 대표연애강사
출처: 세계일보. 2009.1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