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nsibility/소설
사랑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2
불탄고구마
2009. 7. 1. 20:43
이틀, 사흘, 나흘...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고, 학과 분위기상 여학생들과 어울린다는 것은 -뭔가 이상한 부류의 아이로 치부되는- 부자연스러웠다. 그렇게 되어 버렸다. 불행하게도. 술을 먹을 때만 잠깐. 지나칠 때만 잠깐. 아침인사는 '안녕.' 점심인사는 '밥먹었어?' 그저 그뿐이었다. 난 그녀를 볼 때마다 태연한 척 하려 애를 썼다. 그런 날 그녀는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2학년 초반. 남학생들은 모두 같이 군엘 간다는 이유로 휴학을 준비했고, 나또한 예외는 될 수 없었다. 난 휴학을 했고, 그녀가 있는 학교는 멀게만 느껴졌다. 그러나, 다들 군에 간다고 송별회라 해서 많이 술자리가 만들어졌고, 나 또한 얼마 남지 않은 시간들이 -아마도 3월초였을 것이다. 새학기가 시작되었으니까 난 그때 아마도 군 입대까지 약 20일정도 밖엔 남지 않았었다- 너무나도 친구들이 아쉬운 술자리였고, 그런 만남들을 지나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날도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송별회를 위한 술자리를 마련했다. 비교적 사람들이 많이 왔다. 그녀 역시 내가 들어온 지 얼마되지 않아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내 옆에 앉았다. 의외였다. 조금은 당황한 나 였지만, 어색한 것은 정말 싫었다. 말을 많이 건네지 않았던 터라, 휴학하고 살아온 얘기, 아르바이트 한 얘기 등으로 우린 그저 일상의 얘기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또한, 별 다른 얘길 할 수 없는 상황도 계속 되었다. 그녀에게 나는 정작 하고 싶은 얘기는 하지 않고, 가벼운 얘기로 일관했다. 그렇게 원하던 아이가 옆에 앉았건만.
그러나, 술이란 게 뭔가. 다들 알다시피 평소에 못했던 말을 술의 힘을 빌려 하게 하지 않는가. 난 조금만 먹어도 얼굴이 빨개지며 쉽게 취한다. 그 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술이 끝나갈 무렵까지 그녀는 내 옆을 굳건히 지켜주고 있었다. 난 용기를 내었다. '나도 얼마 남지 않았다. 지금이 아니면 내 맘을 전할 수 있는 기회는 없다.' 라는 생각만 들뿐이었다. 가슴에 다짐에 다짐을 해대고는 술을 들이키고 말을 건넸다. 그녀가 시종일관 내내 내 옆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말을 건넨다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나 할말이 있어..."
처음엔 잘 알아듣지 못했는지, 조금 웃다가는 날 다시 쳐다보았다.
"나...할말이 있다고..."
"응? 나한테? 무슨 할 말인데. 해봐"
내 눈을 빤히 쳐다보는 그녈 난 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조금 망설이다가, 말을 꺼냈다.
"나 사실은... 좋아했었어. 예전부터...너... 참 많이..."
가슴이 막 뛰고,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조차도 알지 못할 정도로 머리가 띵해 왔다.
"알고 있었어."
"??"
그렇게 빨리 대답이 나오리라고는 정말 생각지도 못했었고, '알고 있었다' 라고 말 하리라 곤 더더욱 생각지 못했었기 때문에 난 일순간 너무 당황했다.
"알고 있었다고?"
"응. 그래. 그런데, 왜 이제야 말하니?"
이럴 수가! 왜 이제서야? 모르겠다. 왜 이제서야 얘길 했는지. 그 때가 헤어짐의 분위기 였기 때문에 우린 서로를 더 이상 가까이 볼 수 없었다. 자릴 일어서고 나와 다시 다른 술자리로 옮긴 뒤, 난 한참이 지나서야 정신을 차릴 수가 있었다. 그때가 아마 9시쯤 됐으리라. 한기가 아직은 가시지 않은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밖에 나와 담배 한대를 물고 있던 중에 어느새 그녀는 내 옆에 와 있었다. 난 그녀가 사준다는 커피를 마시러 카페에 들어갔고, 그 향기로운 커피를 조금도 마시지 못하고 속이 너무 아파 구토를 하러 다시 밖으로 나와야만 했다. 그녀는 화장실까지 날 따라 왔었고, 구토를 하기전 난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그만 그녀를 안고 말았다. 정말 오랜 기다림 끝에 온 환희였다.
"정말 오래 기다렸어. 정말. 정말로...이 순간을 말야..."
그녀는 아무말이 없었다.
우린 술을 조금 더 한 후, 길을 나섰고 막차만이 남아있을지 없을지도 분간이 안될 만큼 시간은 많이 늦어 있었다. 나보고 바래다 달라는 그녈 난 뿌리치지 못했다. 다행히 버스는 있었고, 그녀가 사는 동네로 가는 그 버스안은 우리를 포함해서 세네명정도에 불과했다. 맨 뒤에 자릴 잡은 그녀와 난 나란히 앉아 아무말 없이 얼굴이 비치는 창밖을 바라볼 뿐이었다. 취했다며 내 어깨에 기대오는 그녀에게 내가 느낀 건 알 수 없는 향기였다. 난 아직도 그녀의 그 향기를 잊지 못한다. 무슨 향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정말 세상에서 제일 좋은 향기라고 생각되었다. 검은 창밖으로 보이는 나와 그녀. 긴 머리가 내 가슴까지 타고 내려와 쓸어올려주며, 이렇게까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창 밖의 나에게 흐뭇한 웃음을 지어 보여 주었다. 그 얼마나 가슴 벅찬 순간인가! 그토록 바라던 여인이 바로 지금 내 옆에 머릴 기대 잠을 자고 있다. 알퐁스 도데의 '별' 이란 소설이 왜 그 때 생각났을까! 스테파네트 아가씨 같은 그녀. 난 그녀의 향기를 만끽하며 눈을 지긋이 감았다.
...3편에 계속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고, 학과 분위기상 여학생들과 어울린다는 것은 -뭔가 이상한 부류의 아이로 치부되는- 부자연스러웠다. 그렇게 되어 버렸다. 불행하게도. 술을 먹을 때만 잠깐. 지나칠 때만 잠깐. 아침인사는 '안녕.' 점심인사는 '밥먹었어?' 그저 그뿐이었다. 난 그녀를 볼 때마다 태연한 척 하려 애를 썼다. 그런 날 그녀는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2학년 초반. 남학생들은 모두 같이 군엘 간다는 이유로 휴학을 준비했고, 나또한 예외는 될 수 없었다. 난 휴학을 했고, 그녀가 있는 학교는 멀게만 느껴졌다. 그러나, 다들 군에 간다고 송별회라 해서 많이 술자리가 만들어졌고, 나 또한 얼마 남지 않은 시간들이 -아마도 3월초였을 것이다. 새학기가 시작되었으니까 난 그때 아마도 군 입대까지 약 20일정도 밖엔 남지 않았었다- 너무나도 친구들이 아쉬운 술자리였고, 그런 만남들을 지나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날도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송별회를 위한 술자리를 마련했다. 비교적 사람들이 많이 왔다. 그녀 역시 내가 들어온 지 얼마되지 않아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내 옆에 앉았다. 의외였다. 조금은 당황한 나 였지만, 어색한 것은 정말 싫었다. 말을 많이 건네지 않았던 터라, 휴학하고 살아온 얘기, 아르바이트 한 얘기 등으로 우린 그저 일상의 얘기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또한, 별 다른 얘길 할 수 없는 상황도 계속 되었다. 그녀에게 나는 정작 하고 싶은 얘기는 하지 않고, 가벼운 얘기로 일관했다. 그렇게 원하던 아이가 옆에 앉았건만.
그러나, 술이란 게 뭔가. 다들 알다시피 평소에 못했던 말을 술의 힘을 빌려 하게 하지 않는가. 난 조금만 먹어도 얼굴이 빨개지며 쉽게 취한다. 그 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술이 끝나갈 무렵까지 그녀는 내 옆을 굳건히 지켜주고 있었다. 난 용기를 내었다. '나도 얼마 남지 않았다. 지금이 아니면 내 맘을 전할 수 있는 기회는 없다.' 라는 생각만 들뿐이었다. 가슴에 다짐에 다짐을 해대고는 술을 들이키고 말을 건넸다. 그녀가 시종일관 내내 내 옆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말을 건넨다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나 할말이 있어..."
처음엔 잘 알아듣지 못했는지, 조금 웃다가는 날 다시 쳐다보았다.
"나...할말이 있다고..."
"응? 나한테? 무슨 할 말인데. 해봐"
내 눈을 빤히 쳐다보는 그녈 난 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조금 망설이다가, 말을 꺼냈다.
"나 사실은... 좋아했었어. 예전부터...너... 참 많이..."
가슴이 막 뛰고,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조차도 알지 못할 정도로 머리가 띵해 왔다.
"알고 있었어."
"??"
그렇게 빨리 대답이 나오리라고는 정말 생각지도 못했었고, '알고 있었다' 라고 말 하리라 곤 더더욱 생각지 못했었기 때문에 난 일순간 너무 당황했다.
"알고 있었다고?"
"응. 그래. 그런데, 왜 이제야 말하니?"
이럴 수가! 왜 이제서야? 모르겠다. 왜 이제서야 얘길 했는지. 그 때가 헤어짐의 분위기 였기 때문에 우린 서로를 더 이상 가까이 볼 수 없었다. 자릴 일어서고 나와 다시 다른 술자리로 옮긴 뒤, 난 한참이 지나서야 정신을 차릴 수가 있었다. 그때가 아마 9시쯤 됐으리라. 한기가 아직은 가시지 않은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밖에 나와 담배 한대를 물고 있던 중에 어느새 그녀는 내 옆에 와 있었다. 난 그녀가 사준다는 커피를 마시러 카페에 들어갔고, 그 향기로운 커피를 조금도 마시지 못하고 속이 너무 아파 구토를 하러 다시 밖으로 나와야만 했다. 그녀는 화장실까지 날 따라 왔었고, 구토를 하기전 난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그만 그녀를 안고 말았다. 정말 오랜 기다림 끝에 온 환희였다.
"정말 오래 기다렸어. 정말. 정말로...이 순간을 말야..."
그녀는 아무말이 없었다.
우린 술을 조금 더 한 후, 길을 나섰고 막차만이 남아있을지 없을지도 분간이 안될 만큼 시간은 많이 늦어 있었다. 나보고 바래다 달라는 그녈 난 뿌리치지 못했다. 다행히 버스는 있었고, 그녀가 사는 동네로 가는 그 버스안은 우리를 포함해서 세네명정도에 불과했다. 맨 뒤에 자릴 잡은 그녀와 난 나란히 앉아 아무말 없이 얼굴이 비치는 창밖을 바라볼 뿐이었다. 취했다며 내 어깨에 기대오는 그녀에게 내가 느낀 건 알 수 없는 향기였다. 난 아직도 그녀의 그 향기를 잊지 못한다. 무슨 향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정말 세상에서 제일 좋은 향기라고 생각되었다. 검은 창밖으로 보이는 나와 그녀. 긴 머리가 내 가슴까지 타고 내려와 쓸어올려주며, 이렇게까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창 밖의 나에게 흐뭇한 웃음을 지어 보여 주었다. 그 얼마나 가슴 벅찬 순간인가! 그토록 바라던 여인이 바로 지금 내 옆에 머릴 기대 잠을 자고 있다. 알퐁스 도데의 '별' 이란 소설이 왜 그 때 생각났을까! 스테파네트 아가씨 같은 그녀. 난 그녀의 향기를 만끽하며 눈을 지긋이 감았다.
...3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