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학교사 중랑경찰서 송용준 경장·한종선 순경
"우리 야학엔 경찰관 아저씨가 두 명이나 있어요!"
- 야학교사 중랑경찰서 송용준 경장·한종선 순경
70·80년대 배우고 싶어도 배울 길이 없는 불우한 이웃에게 따뜻한 온정으로 펼쳐졌던 야학. 지금은 많이 없어진 듯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은 아니다. 많은 학원과 입시 과열로 인해 야학은 이제 한낯 추억 속의 사진처럼 됐다.
☞ 낮에는 '경찰관', 밤에는 '선생님'
서울특별시 중랑구 중랑 경찰서 1층 조사과. 온갖 사고를 비롯해 고소·고발로 상기된 표정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조사과는 다소 삭막한 분위기다. 그러나 선한 인상으로 웃음을 잃지 않고 민원인을 대하는 경찰관 한 명이 열심히 자료를 보고 있다.
중랑서 조사관 경장 송용준(30).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가 미국 경찰들의 친절에 감탄을 하고 바로 경찰에 지원했다. 지난해 9월 '학사 경장 특채'에 선발되어 경찰 제복을 입게 된 송 경장은 현재 조사과에서 의심의 눈초리가 연일 끊이지 않는 고소·고발 민원을 해결해 주는 조사관으로 일하고 있다.
송 경장과는 달리 중랑2파출소에 파견되어 벌써 1년간 경찰 제복을 입고 근무해 온 한종선(29) 순경은 분위기가 다르다. 차분히 말솜씨를 발휘해야 하는 조사과와는 달리 한 순경은 현장에서 피의자와 피해자를 가려내야 함은 물론 온갖 범죄들을 눈으로 직접 목격하는 현장 순찰자다.
이렇듯 평범한 두 경찰관이 낮에 제복을 입고 근무하다 밤만되면 사복을 입고 선생님으로 변신한다면? 송 경장은 영어교사로, 한 순경은 수학교사로 매주 2회 야간 교사 생활을 하고 있다. 일체의 보수나 어떤 반대급부를 바라면서 하는 일이 아니어서 그런지 주위의 눈길이 곱다.
"경찰서에서 일하면 별의 별일이 다 일어나요. 잔뜩 의심 어린 눈으로 쳐다보는 부부에서부터 폭력으로 얼룩진 피의자들을 대할 때면 제 마음까지도 어두워지지요. 하지만, 밤에 순수한 눈초리로 저를 기다리는 학생들을 만날 땐 다시금 그 마음이 정화되는 듯 합니다."
한 순경의 말대로 매일같이 마음을 정화하게 된 건 5개월여 밖에 되지 않았다. 교단에는 한 순경이 먼저 섰다. 야간 순찰시 서울시립대 사회복지관 관계자와 대화를 나누면서 가정 형편이 여유롭지 못한 학생들을 위해 배움의 터를 마련했으면 하는 평소의 바램이 맞아 떨어져 시작하게 됐단다.
☞ 야학 경력 5개월째인 '새내기 선생님'
한 순경과는 달리 송 경장이 영어를 가르치게 된 건 겨우 2개월. 하지만 그는 예전부터 영어 과외 3년, 학원 강사 9개월의 이력이 말해주 듯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에 대한 보람이 남다른 인물이다.
"경찰에 입문해 보니 누군가가 야학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저도 조그만 보탬이 되고자 시작했습니다."
다소곳이 말하는 송 경장의 모습은 영락없는 선생님이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주 2회 정도 강의를 하는 두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인기가 좋다. 중학교 3학년 학생이 주류를 이루는 교실은 매일 난장판이기 일쑤. 그렇지만 사춘기의 예민한 감성을 지닌 아이들이라 함부로 얘기할 수도 없다. 이런 아이들을 대하는 특별한 방법이 있을 것도 같다.
"수업이외에 주로 하는 얘기는 민원인들의 사고 얘기입니다. 피부에 와닿는 말로 대하면 금새 아이들은 '착하게 살아야지'하는 다짐을 하는 듯 해요. 제가 경찰관이라서 그런지 이런 말들을 제일 자신있게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영어와 수학이 경지에 오른 유명 강사진들보다 어쩌면 더욱 값지고 멋진 말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값진 선생님 밑에는 당연히 특출한 제자가 있는 법.
현재 고등학교로 진학한 학생이 한 명 있는데 예전부터 수재였다고 한다. 하지만 편모슬하에서 자라나 제대로 교육을 받을 수 없었는데 그들의 도움이 매우 컸다고. 그래서 현재 그 학생을 도우려는 손길이 끊이지 않고 있단다. 중랑2파출소장이 주관해 PC학원이나 정식 입시학원에 등록시키는가 하면 주위 몇 분이 참고서 15권 등 수업교재를 지원해 오기도 했다.
선행은 이렇듯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온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야학이다 보니 시간상으로 근무 시간과 맞물릴 때도 많고, 정식 영문학과 수학을 전공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수업할 때 어려운 점도 많다. 하지만 그런 제자들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수학 공식이나 영어 문법 하나가 아닐 것이다.
☞ 3평 교실에서 꽃피는 '사랑'
그런 의미로 한 순경의 겸손은 의미있어 보인다. "야학 실천은 주위 여건과 맞아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남을 위해 봉사해야 겠다는 마음은 갖고 있는 듯 합니다. 하지만 주위 환경이 그렇지 못하면 어렵게 되는 거죠. 다행히 저는 도울 여건이 된 것 뿐입니다."
그의 말처럼 실제 야학 교실은 매우 비좁아 15명이 들어가면 꽉 찬다. 그렇다고 장소를 옮길 수도 없다. 인근 면목동 내의 학생들에게까지 도움을 주고 싶지만 여의치 않은 것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더 많은 아이들을 가르치지 못하는 게 제일 아쉬운 점이다. 한창 새파란 얼굴과 환한 미소로 자라나야 할 청소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강의 자체가 아닐 수도 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어쩌면 보다 많은 '사랑'과 '관심'이 아닐까. 이런 이유로 한 순간 실수로 영원히 범죄의 길에 들어설 수도 있는 청소년들에게 두 선생님은 선도자의 역할까지 겸하고 있다.
서울에서 달동네가 사라지면서 야학도 많이 사라졌다. 그만큼 생활 환경이 좋아졌다는 의미. 이런 시대에 송 경장과 한 순경이 특별하게 비춰졌는지도 모르겠다. 때문에 몇 번의 인터뷰를 보고 멀리 충주에서 딸을 소개시켜주고 싶다는 어머니의 전화에서부터 친구들의 소개팅까지 함박웃음을 터트리게 하는 일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행복은 행복을 부르는가 보다. 그래선지, 훈훈한 웃음을 지으며 야학교실로 가는 그들의 발걸음이 무척 가벼워 보였다.
삼성코닝 게재(2000년 4월)
[아름다운 손길] - 야학교사 중랑경찰서 송용준 경장·한종선 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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