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rtfolio/인터뷰
[삼성월드] 제일모직 빈폴 액세서리팀 고희진 차장
불탄고구마
2009. 3. 10. 17:52
“주말에도 매장 나가 시장 상황 살펴요”
한 사람을 제대로 소개하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 없다. 단 몇 시간의 만남으로 그 사람의 전면을 파악하기란 여간 쉬운 게 아니다. 결과물만 놓고 박수와 비웃음이 오고가는 현 시대에 살고 있노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그런 면에서 제일모직 빈폴 액세서리팀 고희진(35) 차장의 첫인상은 그녀가 만들어온 결과물에 비해 꽤 약소해 보였다. 작은 키만 보고 선입견을 갖자면, 그녀의 결과물은 실로 놀랍다. 새벽 6시에 일어나 주말에도 쉬지 않는 그녀의 존재만으로도 빈폴 액세서리팀은 든든하다. 그녀의 일상 속으로 들어가 보자.
99년 액세서리로 발령 … 발로 뛰며 얻은 경험 ‘밑천’
“캐주얼 액세서리에 명품 브랜드가 없다는 점에 주목, 해외 명품 브랜드와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캐주얼 액세서리의 고품격 명품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모 언론사와 인터뷰에서 빈폴 액세서리팀 고희진 차장은 빈폴 액세서리 팀의 발족을 그렇게 설명했다. 그녀는 올 1월 매년 10여명에게만 수여하는 ‘자랑스러운 삼성인상’을 수상했다. 가문의 영광으로 불릴만한 큰 상을 받기까지 걸어온 그녀의 발자취가 내심 궁금했다.
이야기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섬유공학을 전공한 고차장은 지난 96년 제일모직 경력사원으로 입사했다. 그녀가 대학을 졸업할 당시만 해도 ‘제일모직’은 국내 최고의 섬유 산업체로써 대졸자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고차장은 대학 졸업 후 바로 제일모직에 입사하지 못하고 결국 6년 후 원하던 이 곳에 터를 잡게 됐다.
해외사업팀으로 배치된 지 6개월이 지난 후, 빈폴로 발령이 났다. 남성복 부문 기획과 생산 파트에서 근무하던 그녀의 능력은 3년이 더 지나서야 제대로 발휘되기 시작했다. IMF로 시장 분위기가 어수선했던 때, 빈폴은 그녀에게 ‘액세서리’를 맡아보라고 권했다. 당시 액세서리는 말 그대로 회사 내 ‘액세서리’로 숨 가쁜 호흡만을 하던 때 였다. 지지부진하던 분야를 제대로 이끌어 보라는 회사의 오더였다.
맨 땅 위에 헤딩을 해 본 사람이라면 대충 당시 그녀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으리라. 새로운 팀의 발족은 아니지만, 사실상 팀의 발족과 다름없는 스타트였다. 액세서리와 관련 없는 남성복 부문에서 근무하다가 하루아침 책상이 ‘액세서리’라는 명판을 달고 있는 장면을 상상해 보시라. 서류 하나하나가 모두 낯설었다.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죠. 다행히 ‘빈폴’이라는 브랜드 네임을 갖고 출발할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어요. 무식하면 용감해 진다는 말이 있잖아요? 바로 그것이죠.”
용감해 졌다. 시장 상황을 둘러보기 위해 동분서주 발이 닳도록 뛰었다. 책상에 앉아 컴퓨터를 두드린다고 해답이 나오지 않았다. ‘현장의 목소리’가 정답인 듯 했다. 그녀의 ‘빈폴 액세서리’ 첫 전략은 그렇게 세워졌다.
새벽 6시에 출근해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하루를 열어야 수많은 협력 업체 관계자들과의 만남을 이겨낼 수 있었다. 여성으로써, 또 신규 사업 부문을 움직여야 하는 상황에서, 체력은 곧 ‘능력’으로 통했기 때문이다. 여성이기 때문에 나약하다는 소릴 더더욱 듣기 싫었는지도 모른다. 이를 악물었다. 그러하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결과물은 서서히 달라지고 있었다.
팀원 1인당 매출 60억원 넘어서
회사는 곧 비즈니스다. 결과물로 판단한다. 그녀가 이뤄낸 비즈니스 성과물을 보면, 대충 고개가 끄덕여 진다. 발로 뛴 그녀의 전략 탓에 회사 매출은 빈폴 총 매출의 20%를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이쯤 되면 사장님이 발 벗고 나와 그녀에게 소주 한잔 대접해 주고 싶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현재 빈폴에서 제작되는 액세서리는 총 13개 아이템으로 이뤄져 있다. 올해 시계와 신발을 추가했다. 팀 인원도 늘었다. 입사 당시 대리 직함을 갖고 있었던 것이 시장 상황을 훑어내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하는 그녀의 현재 직함은 ‘차장’이다. 지난 1월 자랑스러운 삼성인상으로 인해 과장에서 차장으로 1계급 특진(?) 했다.
팀원 1인당 매출액이 제일모직 내 사업부 중 가장 크다. 지난해 매출액이 총 430억원을 넘는다. 당시 7명이었으니 1인당 60억 원 이상을 해 낸 셈이다. 올해 예상 매출액은 634억원. 그러나 목표는 목표일뿐이다.
“삼성인상을 수상하고 나서 심리적으로 큰 부담이 되요. 인원도 늘어나 더욱 열심히 뛰어야한다는 생각 밖에 없어요. 소비자 니즈를 좀더 확실히 파악하려고 주말에도 쉬지 않죠.”
그래도 그녀는 빈폴의 넓은 시장 폭과 인지도, 에이지 타깃이 넓다는 것 때문인지, 모든 공덕을 ‘자기 탓’으로 돌리지 않았다.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는 식으로 말했다. 그러나 행운도 노력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찾아오지 않는 법. 그녀의 행운은 곧 열심히 발품 팔아 만들어낸 인적 네트워크의 산물인지도 모른다.
현재 빈폴 액세서리 팀은 총 9명이다. 팀워크는 사실 매우 중요하다. 모든 업무에 있어 절대적인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내기 때문인지, 최근 개개인의 업무적 능력보다 대인 관계 능력에 초점을 더 맞추는 ‘입사 기준’이 생길 정도니까. 그런 면에서 빈폴 액세서리 팀은 최강이라 할 만 하다. 팀원 모두가 하나의 개발품에 대해 ‘만장일치’를 결의하지 않으면 제품을 통과시키지 않는다. 이러한 만장일치제는 그녀의 노력과 무관하지 않다.
고차장은 30여개에 달하는 제조사를 돌고, 주말이면 시내에 나가 매장을 살핀다. 소비자 니즈를 제대로 읽어야 제대로 된 제품을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아침 일찍 업무를 시작하는 그녀의 부지런함은 곧 액세서리팀의 활력소가 됐다. 빈폴의 상징인 ‘그린 체크’가 멋진 가방으로 재탄생할 수 있었던 이유도 거기에 있다. 쉼 없이 시장 상황을 읽은 덕이다. 그 만큼 팀원들의 ‘찬성표’도 많아졌다.
그러나 어려운 상황도 많았다. 일일이 다 기억해 낼 순 없지만 ‘가짜 상품’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이 그것. 이는 정통 브랜드에 근무하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공감하는 이야기일 것이다.
“4개월 넘게 매달려 하나의 신제품을 내놓으면 1개월도 안돼 바로 가짜 상품이 나돕니다. 빈폴이 노세일 브랜드라 값비싼 측면도 없지 않지만 창작의 고통을 생각하면 쉽게 판단해선 안 됩니다. 수많은 사람이 공들여 만든 하나의 제품은 그 이상의 가치가 분명 존재하니까요. 땀과 열정은 돈으로 쉽게 환산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생각합니다.”
자기 일 열심히 하는 참한 남자면 ‘OK’
쉼 없이 뛰어온 탓일까. 그녀는 미혼이다. 올해 35세. 독신주의자? 결코 아니다. 인터뷰 도중 그녀는 “결혼하고 싶어 안달난 사람으로 비춰지면 안된다”고 주문했다. 이상형이 아닌, 이 정도 사람이면 괜찮겠다 싶은 남자가 있냐는 질문에 그녀는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참한 남자면 좋다”고 밝혔다. “예쁜 것과 잘 팔리는 것은 분명 다르다”라는 그녀의 판매학개론과 ‘결혼관’이 오버랩 되는 것은 왜 일까.
삼성인으로 살아온 지 벌써 7년 9개월. 그 동안 수많은 일들을 겪었지만, 그녀에게 맞선을 본 것 보다 더 기억에 남는 것을 꼽으라면 역시 ‘액세서리 팀의 출범’일 것이다. 결코 잊을 수 없는 삼성인상을 수상한 것도 ‘가문의 영광’이라 했으니까.
“현재 ‘세계로 나가자’는 빈폴 액세서리의 모토를 바탕으로 해외 진출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곧 해외에서도 만날 볼 수 있을 거예요. 버버리, 코치 등 배워야 할 브랜드가 참 많잖아요. 해외 진출을 위한 공부로 세계적 브랜드에 대한 탐구도 게을리 하지 않고 있죠.”
2004년 빈폴 액세서리의 더욱 힘찬 도약을 꿈꾸고 있는 그녀. 그녀의 발자국이 이제 국내에서 해외로 더 뻗어나가 더 많은 족적을 남길 수 있길 기대해 본다.
Tip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은 아니지만, 보통 사회에 나와 첫 업무가 주어지는 새내기들에게는 모든 것이 ‘맨 땅의 헤딩하기’일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구체적인 목표가 있다면 분명 이뤄진다고 믿어야 합니다. 저는 스포츠를 보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직접 즐기거든요. 직접 움직여야 결과물이 나타난다는 얘기죠. 또한, 즐겨야 합니다. 즐기는 것에는 힘이 있다고 하잖아요. ‘빈폴의 액세서리’에서 ‘의’자 하나 빠뜨리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됐습니다. 그것은 현재 우리들의 꿈으로 실현 돼 있습니다. 누군가는 이미 빈폴 액세서리를 알아봐 주고 있으니까요.”
-삼성그룹 사내보 '삼성월드' 2004년 가을호 게재-
한 사람을 제대로 소개하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 없다. 단 몇 시간의 만남으로 그 사람의 전면을 파악하기란 여간 쉬운 게 아니다. 결과물만 놓고 박수와 비웃음이 오고가는 현 시대에 살고 있노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그런 면에서 제일모직 빈폴 액세서리팀 고희진(35) 차장의 첫인상은 그녀가 만들어온 결과물에 비해 꽤 약소해 보였다. 작은 키만 보고 선입견을 갖자면, 그녀의 결과물은 실로 놀랍다. 새벽 6시에 일어나 주말에도 쉬지 않는 그녀의 존재만으로도 빈폴 액세서리팀은 든든하다. 그녀의 일상 속으로 들어가 보자.
99년 액세서리로 발령 … 발로 뛰며 얻은 경험 ‘밑천’
“캐주얼 액세서리에 명품 브랜드가 없다는 점에 주목, 해외 명품 브랜드와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캐주얼 액세서리의 고품격 명품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모 언론사와 인터뷰에서 빈폴 액세서리팀 고희진 차장은 빈폴 액세서리 팀의 발족을 그렇게 설명했다. 그녀는 올 1월 매년 10여명에게만 수여하는 ‘자랑스러운 삼성인상’을 수상했다. 가문의 영광으로 불릴만한 큰 상을 받기까지 걸어온 그녀의 발자취가 내심 궁금했다.
이야기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섬유공학을 전공한 고차장은 지난 96년 제일모직 경력사원으로 입사했다. 그녀가 대학을 졸업할 당시만 해도 ‘제일모직’은 국내 최고의 섬유 산업체로써 대졸자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고차장은 대학 졸업 후 바로 제일모직에 입사하지 못하고 결국 6년 후 원하던 이 곳에 터를 잡게 됐다.
해외사업팀으로 배치된 지 6개월이 지난 후, 빈폴로 발령이 났다. 남성복 부문 기획과 생산 파트에서 근무하던 그녀의 능력은 3년이 더 지나서야 제대로 발휘되기 시작했다. IMF로 시장 분위기가 어수선했던 때, 빈폴은 그녀에게 ‘액세서리’를 맡아보라고 권했다. 당시 액세서리는 말 그대로 회사 내 ‘액세서리’로 숨 가쁜 호흡만을 하던 때 였다. 지지부진하던 분야를 제대로 이끌어 보라는 회사의 오더였다.
맨 땅 위에 헤딩을 해 본 사람이라면 대충 당시 그녀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으리라. 새로운 팀의 발족은 아니지만, 사실상 팀의 발족과 다름없는 스타트였다. 액세서리와 관련 없는 남성복 부문에서 근무하다가 하루아침 책상이 ‘액세서리’라는 명판을 달고 있는 장면을 상상해 보시라. 서류 하나하나가 모두 낯설었다.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죠. 다행히 ‘빈폴’이라는 브랜드 네임을 갖고 출발할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어요. 무식하면 용감해 진다는 말이 있잖아요? 바로 그것이죠.”
용감해 졌다. 시장 상황을 둘러보기 위해 동분서주 발이 닳도록 뛰었다. 책상에 앉아 컴퓨터를 두드린다고 해답이 나오지 않았다. ‘현장의 목소리’가 정답인 듯 했다. 그녀의 ‘빈폴 액세서리’ 첫 전략은 그렇게 세워졌다.
새벽 6시에 출근해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하루를 열어야 수많은 협력 업체 관계자들과의 만남을 이겨낼 수 있었다. 여성으로써, 또 신규 사업 부문을 움직여야 하는 상황에서, 체력은 곧 ‘능력’으로 통했기 때문이다. 여성이기 때문에 나약하다는 소릴 더더욱 듣기 싫었는지도 모른다. 이를 악물었다. 그러하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결과물은 서서히 달라지고 있었다.
팀원 1인당 매출 60억원 넘어서
회사는 곧 비즈니스다. 결과물로 판단한다. 그녀가 이뤄낸 비즈니스 성과물을 보면, 대충 고개가 끄덕여 진다. 발로 뛴 그녀의 전략 탓에 회사 매출은 빈폴 총 매출의 20%를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이쯤 되면 사장님이 발 벗고 나와 그녀에게 소주 한잔 대접해 주고 싶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현재 빈폴에서 제작되는 액세서리는 총 13개 아이템으로 이뤄져 있다. 올해 시계와 신발을 추가했다. 팀 인원도 늘었다. 입사 당시 대리 직함을 갖고 있었던 것이 시장 상황을 훑어내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하는 그녀의 현재 직함은 ‘차장’이다. 지난 1월 자랑스러운 삼성인상으로 인해 과장에서 차장으로 1계급 특진(?) 했다.
팀원 1인당 매출액이 제일모직 내 사업부 중 가장 크다. 지난해 매출액이 총 430억원을 넘는다. 당시 7명이었으니 1인당 60억 원 이상을 해 낸 셈이다. 올해 예상 매출액은 634억원. 그러나 목표는 목표일뿐이다.
“삼성인상을 수상하고 나서 심리적으로 큰 부담이 되요. 인원도 늘어나 더욱 열심히 뛰어야한다는 생각 밖에 없어요. 소비자 니즈를 좀더 확실히 파악하려고 주말에도 쉬지 않죠.”
그래도 그녀는 빈폴의 넓은 시장 폭과 인지도, 에이지 타깃이 넓다는 것 때문인지, 모든 공덕을 ‘자기 탓’으로 돌리지 않았다.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는 식으로 말했다. 그러나 행운도 노력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찾아오지 않는 법. 그녀의 행운은 곧 열심히 발품 팔아 만들어낸 인적 네트워크의 산물인지도 모른다.
현재 빈폴 액세서리 팀은 총 9명이다. 팀워크는 사실 매우 중요하다. 모든 업무에 있어 절대적인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내기 때문인지, 최근 개개인의 업무적 능력보다 대인 관계 능력에 초점을 더 맞추는 ‘입사 기준’이 생길 정도니까. 그런 면에서 빈폴 액세서리 팀은 최강이라 할 만 하다. 팀원 모두가 하나의 개발품에 대해 ‘만장일치’를 결의하지 않으면 제품을 통과시키지 않는다. 이러한 만장일치제는 그녀의 노력과 무관하지 않다.
고차장은 30여개에 달하는 제조사를 돌고, 주말이면 시내에 나가 매장을 살핀다. 소비자 니즈를 제대로 읽어야 제대로 된 제품을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아침 일찍 업무를 시작하는 그녀의 부지런함은 곧 액세서리팀의 활력소가 됐다. 빈폴의 상징인 ‘그린 체크’가 멋진 가방으로 재탄생할 수 있었던 이유도 거기에 있다. 쉼 없이 시장 상황을 읽은 덕이다. 그 만큼 팀원들의 ‘찬성표’도 많아졌다.
그러나 어려운 상황도 많았다. 일일이 다 기억해 낼 순 없지만 ‘가짜 상품’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이 그것. 이는 정통 브랜드에 근무하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공감하는 이야기일 것이다.
“4개월 넘게 매달려 하나의 신제품을 내놓으면 1개월도 안돼 바로 가짜 상품이 나돕니다. 빈폴이 노세일 브랜드라 값비싼 측면도 없지 않지만 창작의 고통을 생각하면 쉽게 판단해선 안 됩니다. 수많은 사람이 공들여 만든 하나의 제품은 그 이상의 가치가 분명 존재하니까요. 땀과 열정은 돈으로 쉽게 환산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생각합니다.”
자기 일 열심히 하는 참한 남자면 ‘OK’
쉼 없이 뛰어온 탓일까. 그녀는 미혼이다. 올해 35세. 독신주의자? 결코 아니다. 인터뷰 도중 그녀는 “결혼하고 싶어 안달난 사람으로 비춰지면 안된다”고 주문했다. 이상형이 아닌, 이 정도 사람이면 괜찮겠다 싶은 남자가 있냐는 질문에 그녀는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참한 남자면 좋다”고 밝혔다. “예쁜 것과 잘 팔리는 것은 분명 다르다”라는 그녀의 판매학개론과 ‘결혼관’이 오버랩 되는 것은 왜 일까.
삼성인으로 살아온 지 벌써 7년 9개월. 그 동안 수많은 일들을 겪었지만, 그녀에게 맞선을 본 것 보다 더 기억에 남는 것을 꼽으라면 역시 ‘액세서리 팀의 출범’일 것이다. 결코 잊을 수 없는 삼성인상을 수상한 것도 ‘가문의 영광’이라 했으니까.
“현재 ‘세계로 나가자’는 빈폴 액세서리의 모토를 바탕으로 해외 진출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곧 해외에서도 만날 볼 수 있을 거예요. 버버리, 코치 등 배워야 할 브랜드가 참 많잖아요. 해외 진출을 위한 공부로 세계적 브랜드에 대한 탐구도 게을리 하지 않고 있죠.”
2004년 빈폴 액세서리의 더욱 힘찬 도약을 꿈꾸고 있는 그녀. 그녀의 발자국이 이제 국내에서 해외로 더 뻗어나가 더 많은 족적을 남길 수 있길 기대해 본다.
Tip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은 아니지만, 보통 사회에 나와 첫 업무가 주어지는 새내기들에게는 모든 것이 ‘맨 땅의 헤딩하기’일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구체적인 목표가 있다면 분명 이뤄진다고 믿어야 합니다. 저는 스포츠를 보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직접 즐기거든요. 직접 움직여야 결과물이 나타난다는 얘기죠. 또한, 즐겨야 합니다. 즐기는 것에는 힘이 있다고 하잖아요. ‘빈폴의 액세서리’에서 ‘의’자 하나 빠뜨리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됐습니다. 그것은 현재 우리들의 꿈으로 실현 돼 있습니다. 누군가는 이미 빈폴 액세서리를 알아봐 주고 있으니까요.”
-삼성그룹 사내보 '삼성월드' 2004년 가을호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