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rtfolio/일반기사[2003~2007]
[기획특집]전농 SK아파트 제3편-'SK는 살인자?'
불탄고구마
2009. 3. 10. 17:15
“왜 추가부담금을 걷었냐는 거지”
추가부담금외 공사비 인상, 등기비 갹출 ... SK는 진정 적자였나?
SK에 대항하던 ‘독립투사’ 別世 후 주민들 ‘조용’
지난 1월호에 이어 이번 호에서는 전농SK아파트 조합 시절로 돌아가 추가부담금 및 회장 선출과 관련해 의문을 제기하고자 한다. 전농SK아파트에서 정당하게 회장에 선출되고도 임할 수 없었던 故허경정씨를 비롯, 총 1100여 세대에게 가구당 400-700만원을 갹출한 SK건설에도 초점을 맞췄다.
전편이 ‘하자적출’과 관련해 SK에 물음표를 던졌다면 제2편에서는 과거로 돌아가 조합시절 행해졌던 문제점에 대해 파악했다. 약 10여년간 조합원을 거치면서 숱한 데모와 폭력 시위로 얼룩지기도 했던 전농SK아파트. 지금은 “생각도 하기 싫다”는 주민이 대다수다. 그만큼 뭔가 석연찮은 점이 남아 있다는 얘기일 게다.
취재 중 중요 취재원이 사망하거나 대체로 중요 사안에 대해 함구로 일관해 어려움이 많았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故허경정씨외 가장 많은 사실을 알고 있을 법한 조합원 시절 총무로 재직했던 이영재씨의 행동변화다.
‘기사에 대해 소송을 제기하겠다’는 강경한 모습에서 2004년 1월초 본지에라도 찾아와 취재에 응하겠다는 식으로 바뀌었다. 그의 행동 변화는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아울러, 허경정씨의 부인과 조합원 시절 감사를 지낸 노인정 회장, 임원이었던 K씨의 생생한 증언을 곁들였다.
한편, 제1편에 언급했던 각종 법정 소송건은 모두 일단락 됐다. 입주자대표회의는 부녀회의 손을 들어 ‘해체’됐으며, 부녀회에 걸었던 배임혐의와 명예회손도 각각 ‘혐의없음’과 고소 취하의 결과를 가져왔다. 그러므로 이제 법정 소송은 SK와 부녀회의 ‘하자적출에 관한 보상 문제’건 만 남은 셈이다.
드라마같은 이야기다. 드라마에도 주연과 조연이 있듯, 이해를 돕기 위해 본 기사에 언급되는 인물에 대해 다소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아울러, 모두 실명으로 기사화했음을 밝힌다.
故허경정 - 전농SK아파트에서 지난 98년 조합장 선거로 선출됐으나(1차 투표) 당선되지 못하고 소송을 제기, 결국 2000년 아파트 완공 후(조합원 해체 후) 조합장으로 선출된다. 그는 2002년 11월 급성 간경화로 사망한다.
유수현 - 허경정씨 선출에 이의를 제기, 2차 투표때 선출된 조합장으로써 허경정씨와 소송에 휘말리게 된다. 그는 뇌물수수로 징역 2년, 집행유예 4년의 선고를 받고 조합장에서 물러난다.
이영재 - 제2기 조합원 시절 총무를 맡았던 인물로 현재 청산인 자격으로 있다. SK와의 일련의 사태에 대해 가장 많은 부분을 알고 있는 인물이다.
박정은 - 부녀회 제2기 회장으로써 현재 전농SK아파트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문제를 터뜨린 장본인이다. 그의 지적이 없었다면 SK와의 추가부담금 및 하자적출 등 부당함을 알리지 못했을 것이다.
인터뷰1 - 전농SK아파트 조합 총회 구성 당시 임원 K씨
“너무나 많은 의문이 남지만 지금은 잊고 싶습니다”
왜 청산인은 SK에서 월급을 받았을까?
제1편에서 다뤘던 ‘하자적출문제’를 배제하고 나니, 지난 90년대초 조합원 구성시절부터 2000년 7월 분양 시기까지 있었던 일련의 의문점 등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 중 익명을 요구한 K씨는 조합원 당시 임원을 역임한 인물로 비교적 소상한 이야기를 들려주어 가감없이 게재한다. 그러나, 그도 “아직도 의문점이 많이 남는다”“모르는 부분이 있다”며 기자에게 보다 상세한 내용을 들려주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워했다.
-SK건설을 사업자로 선정한 것은 어떻게 이뤄진 것입니까?
당시 조합 총회를 열어 선정한 것이죠. 라이프와 SK 등 세 곳이 입찰에 응했는데, 라이프는 부도 날 상황이어서 SK로 선정했어요. 대기업이잖아요.
-SK건설에서 지불하라고 명시한 추가부담금과 관련해 묻겠습니다. 이러한 규정이 조합원과 SK건설과의 시공 계약 당시 규정에 명시돼 있었나요?
처음 시작할 당시, SK에서는 ‘일절 추가부담금이 없다’고 했었습니다. 훗날 계약상에 물가연동제에 의해 추가부담금이 있을 수 있다고 했지요. 그러한 규정이 있긴 했어요.
-지난 98년 조합장 선거시 故허경정씨가 과반수 이상 찬성으로 선출되고도 왜 회장에 당선될 수 없었나요?
반대파(K모씨는 그들을 반대파라 일컬었다)들 때문이죠. 그들의 이유는 뭐... 하여튼 그것으로 인해 소송을 제기 했죠. 1심, 2심 모두 이겼어요. 그런 식으로 시간이 흘러 아파트를 다 짓고 故허경정의 조합장 선출 결정이 났지요. 그러나 아파트 분양되고 나서 그게 무슨 소용이예요.
-역대 조합장들은 어땠죠?
지난 96년 조합 승인 후 제1기 조합장이 김봉길씨였어요. 정식으로 조합장을 했지요. 조합장을 하다가(2년 임기) 지난 98년 다시 조합장을 뽑았는데... 김봉길씨가 다시 입후보하겠으니 도와달라 했었죠. 근데 이상하게도 선거 이틀 전에 입후보 사퇴를 하더군요. 그 이유는 지금까지 몰라요.
그 즈음에 시의원이던 최종근씨가 재개발에 개입하면서 많은 변화가 생겼죠. 이분은 고문 정도 했어요. 그 때 이영재씨가 총무를 맡았죠. 그러던 중 강신옥 변호사가 회장 직무대행을 했고. 98년도 얘깁니다.
※여기서 약간의 상황 설명이 필요하다. 제2기 조합장 선거는 98년에 열렸는데, 조합장 임기가 2년이라 2000년 분양을 앞두고 마지막 조합장 선거를 한 것이었다. 그런데 故허경정씨가 조합 총회 투표때 과반수 이상 찬성으로 결정이 됐는데도, 이의를 제기한 주민이 있어 다시 투표를 했다. 2차 투표때 유수현씨가 당선됐는데 이를 두고 故허경정씨측이 받아들일 수 없어 다시 유수현씨에게 업무중지가처분신청을 내게 된다. 그 소송을 건 사람이 바로 K씨다. 故허경정씨는 결국 분양되던 2000년 조합장으로 인정된다는 판결을 받아 조합장에 선출됐으나, 이미 아파트가 완공돼 무용지물이 됐다.
아울러, 이영재씨 진술에 의하면 김봉길씨는 몸이 아파 1년 6개월만에 조합장을 그만뒀다고 했다. K씨는 “김봉길씨가 당시 제2기 조합장 선거에 재입후보하겠다”고 한 것으로 보아 몸이 아파 제1기 조합장 사표를 냈다는 이영재씨의 말과 다른 부분이다.
-어떤 변화가 있었다는 것이죠?
그 분이 유도하는대로 조직이 구성되고 그 쪽으로 집합되면서 모이고 그랬죠. 예전에 하던 분들이 많이 바뀌었어요.
-반대파라 일컫는 그 분들이 故허경정씨를 반대한 이유는 구체적으로 뭔가요?
故허경정씨가 신임을 못얻은 면도 있었어요. 좀 그런게 있었어요. 그래서 ‘故허경정은 안된다’그런 사람이 있었고, 이런 걸 밝힐 사람은 ‘故허경정 밖에 없다’는 사람도 있었던 것이고. 파가 갈렸죠.
-당시 구성됐던 조합원들 총인원은 몇 명 정도 됐나요?
임대아파트까지 2700세대 정도 될 거예요. 870세대는 시에서 분양한 임대아파트구요. 추가부담금은 1100세대 정도 될 거예요.
-최대 핵심 사안이 추가부담금인데요. 추가부담금에 대해 반대하셨나요?
2000년 7월 당시 우리는 ‘절대 내선 안된다’ 그랬죠. 처음에는 가구당 2천만원까지 얘기가 나왔었어요. 인쇄된 문건으로 나돌기도 했어요. 우리는 주민들에게 ‘이걸 통과시켜선 절대 안된다’고 했죠. 그러나 당시 조합을 운영하던 사람들은 ‘내야 한다’고 주장했고요.
그러던 중 당시 추가부담금을 반대하던 대의원 전부를 제명시켰어요. 강신옥 변호사가 실권을 갖고 있을 때 였고, 우두머리는 유수현씨였죠. 대의원들이 이를 저지하려고 총회에 참석하려고 했는데 용역을 시켜 제지하고 그랬죠. 그 용역이 깡패였다는 얘기도 있었구요.
대의원 총회 때 KBS에서 취재를 나왔는데도 그 사람들은 일사천리로 모든 사안을 통과시키더군요. 여러 가지가 많은데 얘기하기가 그러네요.(웃음) 궁금한 건 많은데...
100% 조합원 모두 추가부담금을 냈습니다. 내지 않으면 SK에서 집열쇠를 주지 않았으니까요. 총회때 밀고 들어가서 그거 안된다고 하려고 했는데, 결국 못들어가서 결정된 거죠.
-전농동 인근 주변에도 이런 경우가 있나요?
우리도 그것이 궁금해 조사해 봤어요. 인근 S아파트는 배당금을 60-70만원씩 줬는데 왜 우리만 이러느냐고 외쳤죠. 그리고, SK K모 부장은 이거 맡고 나서 이사로 진급했다더군요.
-그가 진급한 이유에 대해 아십니까?
그건 모르죠. 진급이란 게 뭔가 잘한 일이 있으니 주는 상 아니겠어요?
-유수현씨는 누구인가요?
故허경정씨가 조합장으로 선출됐을 때 이의를 제기한 인물인데요. 뇌물수수로 구속됐던 자로 징역 2년 집행유예 4년 받은 적도 있지요. 하청업자에게 돈을 받은 혐의였어요. 조합장이었는데 뇌물 때문에 그만 뒀죠.
-현재까지 조합 시절 청산인으로 선정된 이영재, 이영진씨 등은 지금까지 120만원의 월급을 받았다고 하던데요.
옛날 조합원 시절 이사했던 분들 4명이 매월 30만원씩 판공비로 SK로부터 돈을 받았다고 들었는데요. 왜 지금까지 받는지 이상하네요. 이영진 이영재씨가 돈을 받았다는 것은 요새 알았어요. 지금까지 몰랐죠. 의문점은 많아요. 정말 이상해요. 청산 총회를 해서 선출됐다고 했다는데, 자기들은 총회를 모두 개최 했데요. 구청에서도 안했다는 데 도대체 어디서 한 지 모르겠네요. 주민들 상대로 해야 하는데, 하지 않았어요.
-왜 주민들은 그러한 의문점을 갖고도 대처하지 않으셨나요?
주민들이 이제 먹고 살만 하니까 신경을 쓰지 않은 거죠. 저부터도 그런 것 신경쓰고 싶지 않거든요. 진절머리나는 일이 너무 많아서인지, 귀찮아서인지는 몰라도 생각도 하기 싫은 거죠. 조합시절에도 그랬어요.
이제는 주민들이 아파트에 신경 쓰기가 귀찮은 거예요. 나서서 해봐야 될 일도 없어요. 주민들이 단합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을 텐데 말예요.
강신옥 변호사가 직무대행 했을 때도 주민들이 모였다면 이렇진 않았을 거예요. 주민 참여가 너무 없었죠. 바른 말 하면 잘라버리고, 그 사람들 쪽으로 포섭되다 보니까 부당한 걸 알아도 말을 못해요. 말하면 그 사람만 병신되는 거죠. 건설 단가 매길 때만 해도 지분율하고 실제와 다르다고 몇 번을 얘기했는데... 지분율을 알아야 하는데 말예요.
하여간 SK에서 머리를 써서 한 것 같아요. 추가부담금은 안된다고 했는데도 통과가 됐죠.
-만약, 추가부담금이 부당한 것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소송을 걸어서라도 찾아야죠.
-분양금에 대한 불만은 없었나요?
그건 없었어요.
-당시 추가부담금으로 400-700만원은 꽤 큰 돈인데요. 지금처럼 아파트 값이 비쌀 때도 아니고요?
당시(2000년 7월) 42평이 2억이 안됐었어요. 지금은 거의 2배로 뛰었죠. 지금으로 비교하면 가구당 1400만원을 낸 것과 같은 이치죠. 故허경정씨가 참 애쓰다가... 안됐죠.
-당시 회의록을 갖고 계신가요?
지방으로 이사가면서 많이 버렸어요. 진절머리가 나서...
-현 박정은 부녀회장은 어떤가요?
당시 조합원이었는데, 관여를 안했죠.
-혹시 이영재씨의 前직업을 알 수 있을까요?
이영재씨는 1기때 아무 직책도 없었어요. 청산인은 공식적으로 뽑은 게 아닙니다. 그 양반 직업은 한마디로 소위 ‘막일’이었죠. 아궁이도 고쳐주고 하는.
-그 얘기는 이영재씨가 회계나 경리 등 재무 관련 업무 경험이 없다는 의미인가요?
그렇죠.
-근데 어떻게 청산인으로 선정 됐을까요?
SK에 많이 도움을 주니까요.
-추가부담금을 통과시키려고 노력한 자가 있나요?
많았죠. 주민들 중 “저런 식으로 하면 재개발이 늦어진다.” “주민들이 손해본다”라고 말한 사람도 많았죠. 강신옥 변호사가 직무대행할 때였는데, 주민들도 당시 우리를 매도한 게 뭐냐면 이거(추가부담금)라도 빨리 납부해서 입주해야 하지 않느냐 한거죠. 주민들 의식도 문제예요.
-‘그 쪽 편’이라 언급하시는데 구체적으로 누구를 지칭하는 건가요?
당시 집행부를 말하는 겁니다. 유수현, 이영진, 이영재 등 당시 집행부였죠. 하여간 당시 회의할 때도 못들어가고... 그랬죠.
-상식적으로 이해안되는 부분이 많은데요?
그래서 故허경정씨가 이거 밝히려다가 그만 돌아가신거 아닙니까. 안타깝죠.
-지금은 그들과 어떤 관계로 지내시나요?
지금은 밥도 먹고 그래요. 한때 원수진 거 다시 원수지기도 그렇고요. 그래도 진실은 밝혀져야 합니다.
-동대문구청의 대응은 있었나요?
청량리경찰서나 동대문구청 도시정비국에서 개입하려고 하나요? 안하죠. 구청에 쳐들어가서 싸우기도 했는데 원칙대로만 얘기하죠.
-추가부담금에 대해서 구청에서는 어떤 반응을 보이던가요?
그건 주민 총회 거쳐서 해결하라고 했죠. 그래서 우리가 구청과 조합회에게 주민 총회를 거쳐 해결할테니 도움을 달라고 했는데 답변이 안왔어요.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
난 이제 떠난 사람이잖아요. 지금은 사실 SK아파트 하면 쳐다보기도 싫어요. 청량리 경찰서에 제 친구가 있는데 그런 말을 하더군요. 하루라도 빨리 손을 떼라고. 그런 맘가짐으로는 힘들다고 하더군요. 배짱도 없어서.
인터뷰2 - 전농SK아파트 노인회 신양호 회장
“도대체 수백만원씩 추가부담금을 왜 걷었는지 모르겠다니까”
SK, 등기비용으로 가구당 10만원 추가 갹출
SK 담당 임직원끼리 소송 걸어 퇴사했다는 주장도
노인회에 계신 분들은 조합 시절 임원이건 아니건 관여했을 분이 많을 것 같았다. 특히, 당시 조합원 감사였던 신양호 노인회장과 부조합장이었던 김홍규씨의 발언이 꽤 궁금했다. 그들 이야기의 핵심은 “추가부담금은 억울했다”라는 것이다. 다행히 기자가 찾아갔을 무렵, 신회장과 김홍규씨 모두 자리에 있어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추가부담금을 모두 내셨는데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가요?
그것에 대해 소송을 걸고자 했는데 허회장이 죽었잖아. 그래서 못했지. 참 안타까워. 그 사람이 노력한 걸로 치면 다 말로 못해. 옷장 하나 가득 서류가 있을 거야. 아마.
-동대문구청의 행정조치는 어떠했습니까?
구청에서 뭐 신경쓰나. 신경안썼지.
-지금 조합 통장에 남아 있는 돈이 있긴 한데 SK와의 채무관계로 인해 조합원에게 줄 수익배당금은 전혀 없다던데요.
지금 7-8억원 정도 남아있다고 하는데 말야. 이게 뭐 우리한테 나눠주겠어?
-당시 SK건설 김모부장은 이를 계기로 승진 했다던데요? 알고 계시나요?
알지. 그 사람 이 일로 인해 미아지구 북한산시티까지 맡았다지. 근데, 거기서도 주민 반대가 극심해서 뭐 사표냈다는 말이 있더군. 같은 SK 직원끼리 소송에 휘말렸다는 얘기도 있고.
-SK건설 직원이 같은 회사 상사를 향해 소송을 걸었다는 건가요?
자세한 내막은 잘 몰라. 그냥 그렇게만 알고 있지.
-인근 아파트에서는 조합원들에게 수익배당금이 돌아갔다던데요.
돌아갔다지. 인근 S 아파트는 가구당 300만원인가 돌아갔고, C 아파트는 가구당 180만원씩 줬데. 샤시도 해주고 말야. 이게 말이냐 되냐 말이야. 우린 왜 그것도 모자라 돈을 걷었냐는 거야. 그리고 이거 알아? 당시 등기비용은 SK에서 가구당 10만원을 더 걷었어. 등기대행 비용이지. 난 내가 직접 가서 하니까 몇천원 들더구만. 도둑놈들.
※열노하신 분들이라 인터뷰를 길게 할 수 없었다. 안타깝지만 예전 일을 기억해내시는 일도 힘드셨으리라 여겨진다. 인터뷰 당시 노인회에는 다섯분 정도의 노인정 회원이 계셨는데 모두들 추가부담금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분들은 故허경정씨와 같은 기백을 가진자가 없어 모두들 ‘그날의 일들을 잊고 산다’고 했다.
가구당 수백만원, 총 70억원이상의 금액을 고스란히 SK에 납부하고도 누구하나 이의를 지금까지 제기하지 않고 있는 셈이다. 추가부담금 외에도 등기비용으로 10여만원을 납부한 것도, 공사 중에도 단가를 올려줬다는 부녀회의 얘기도 의문점이다. 귀찮아서일까, 잊고 싶은 마음이 커서일까. 왜 그들은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사안에 대해 대응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인가.
인터뷰3 - 전농SK아파트 조합당시 前조합장 故허경정씨 부인
“진실을 밝히려는 자만 손해 보는 세상입니다”
“너무 늦게 오셨네요. 기자님”
故허경정씨 부인의 성함은 밝힐 수 없다. 심리적 육체적 스트레스가 심해서인지 그녀는 ‘심장질환’을 앓고 있다고 했다. 기자의 조심스런 질문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을 보면 심상치 않아 보였다.
위에 K씨가 언급했던 것처럼 ‘반대파’라 일컬어지는 ‘SK건설 및 그들’과 대항해 싸운 ‘독립투사’가 바로 故허경정씨다. 지난 2002년 11월 갑작스레 간질환으로 사망하고 아무도 이에 대해 언급하는 사람이 없어 그녀도 이제는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은 과거”라며 인터뷰를 거부했다.
故허경정씨는 원래 술을 좋아하긴 했으나 건강했다고 한다.
갑작스레 일어난 일이라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故허씨부인. 조합장으로 판정이 나면 무엇하랴. 심신이 지칠대로 지친 후였는데... 허씨부인은 결국 SK에 소송을 걸어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그러나 SK측에서는 “조합장 선출 시기부터 분양 시기까지의 월급분만 지급하겠다”고 말할 뿐.
허씨부인은 인터뷰 내내 ‘잘 알지 못해 말할 게 없다’는 말을 자주 사용했다. 어렵게 그녀를 찾아간 날 날은 매우 흐렸다. 먹구름에 그날의 상처를 묻고 싶은 지, 그녀는 연신 창 밖을 보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언제 이사 하셨나요?
2003년 12월에 했어요. 집이 경매에 부쳐져서 어쩔 수 없이 나오게 됐죠.
-가장 억울하다고 생각되는 점이 뭔가요?
조합장으로 선출되고도 출근하지 못한게 억울합니다. 애아빠는 그랬어요. 소송을 걸더라도 정정당당하게 들어가겠다고. 과반수 찬성이 아니라는 허무맹랑한 얘기를 들으니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애아빠 성격에 가만있었겠습니까. 결국 최종 판결났잖아요? 아파트 다 짓고 나서 조합장 자격이 있다고 판결이 나면 무엇합니까?
-故허경정씨가 갖은 소송으로 고생할 때 부인께서는 어떤 말을 해 주셨나요?
그만 두자고 했죠. 지겨우니까. 남들은 다 안하는데 혼자 싸우는 게 뭐 보기 좋겠어요. 도움 주는 사람은 있었지만 지금 보세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잖아요. 진실을 밝히려는 자만 손해 본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게 된 거예요.
-생전에 부군에 대해 말씀해 주신다면?
담배 안피던 분이 담배를 펴댔지요. 어느날 아들 권유로 건강진단을 받았는데 간경화가 나왔어요. 그 후 29일만에 돌아가시더군요. 허무했죠. 소송 준비를 다 해놓고 돌아가셔서 참 안타깝지요. 그 분은 생전에 유통업을 하시면서 직원을 한 때 50여명 거느릴 정도로 번성했던 사업가였어요.
소송비로 다 날렸죠. 이러한 소송을 할 적에는 미아북한산시티SK아파트와도 연대해 자주 왕래하기도 하더군요. 거긴 지금 어떻게 진행되나 몰라. 아직 등기도 안났다던데... 그 분은 소송을 시작하면서 항상 ‘아는게 힘이고 모르고 당하지 말자’는 말을 입버릇처럼 말씀하셨지요. 기자님, 너무 늦게 오셨네요.
-이 곳에서 오래 사셨나요?
한 20여년 될 거예요.
-그럼 소송은 모두 현재 중단된 상태인가요?
복사비만 해도 엄청납니다. 집이 경매에 넘어갈 만 하죠. 소송하는 데 돈이 얼마드는 줄 아십니까? 이걸 저 혼자 어떻게 합니까. 애아빠도 결국 못한 걸을... 중단할 수밖에 없죠. 서류는 모두 캐비넷안에 있어요. 무슨 서류가 있는지도 몰라요.
-처음부터 부군께서 조합장들을 향해, 또는 SK를 향해 대응하신건가요?
처음엔 아무것도 모르는 그저 평범한 주민이었죠. 그런데 조합에 나서게 되고부터 잘못된 게 눈에 보이더랍니다. 그래서 시작한 거지요. 그 때부터 우리 가정의 불운은 시작된 거라 생각합니다.
아무리 기자 양반이 취재해 봤자 이건 밝혀지지 않습니다.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테니까요.
-당시 주민들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당시 주민들 모두 동조하긴 했지요. 그런데 나서는 사람이 없어요. 같은 주민끼리 얼굴 붉히기 싫다는 것이죠. 순박한 건지 순수한건지는 몰라도... 지금 전 신문이나 방송 뉴스도 안봅니다. 아직 상처가 아물지 않았나 봐요. 잊고 살고 싶은게 아니라 들추기 싫다는 말이 더 정확할 듯 싶네요. 말로 다 못합니다.
-청와대에 투서도 넣으셨다고요?
그랬죠. 고충처리위원회, 청와대, 경찰 등 모두 넣었어요. 결과가 어땠을까요? 감감 무소식이죠. 어디 이런 문제로 나서주기나 하겠습니까.
※그녀는 다른 기자들은 아직 찾아온 바 없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대화가 무르익을 무렵, 이야기를 조금씩 풀어놓았다.
-추가부담금 결의시 왜 저지하지 못했습니까?
남편만큼 아는 게 없어 정확히 대답할 수 없는 게 안타깝군요. 그 때 당시 조합 대의원 회의때 였을 겁니다. 대의원들이 제명당해서 회의에 참석할 수 없는 상태였는데, 그래도 참석하고자 했었지요. 그러나, 용역을 불렀는지 어쨌는지 무력으로 제지당했죠. 총회에 참석조차 못했는데 무슨 저지를 했겠습니까.
-SK에서 보상금을 받으셨다는데요.
2000년 남편을 조합장으로 판정한다는 판결문이 난 후 SK에 소송을 걸었어요. 결국 조합장 시절부터 당선됐을 때까지의 봉급분을 계산해 주더군요. 더 이상 그건 언급하고 싶지 않습니다.
-소송 제기 후 SK측에서의 반응은 어땠나요?
나름대로 친절하더군요. ‘힘드시겠어요’라는 위로도 해주고. 남편이 살아있을 때와 돌아가시고 나서의 행동이 하늘과 땅 차이더군요. 신기하죠? 태도가 변하니까.
-하고 싶은 말씀은?
동네 분들은 남편을 똑똑하다 했습니다. 그러나 똑똑한게 아닙니다. 남들처럼 살면 고달프진 않을 거예요. 제가 지금 혈압이 높아 고생하고 있어요. 남편 생존시에도 해결 안된 문제가 다시 해결되리란 생각은 안합니다. 다시 도마위에 오르는 것도 원치 않고요. 지금은 제가 누구의 험담도 못하는 입장입니다. 다른 분들도 만났겠지만 정확한 얘기는 해주지 않았을 겁니다. 이해합니다. 지금은 SK만 보면 눈도 돌릴 지경이지요.
※故허경정씨는 지난 98년 조합장 선거 당시 과반수이상 찬성되고도 회장에 당선되지 못했다. 이유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허경정씨는 그 후 소송을 걸어 결국 2000년 전농SK아파트가 완공되고 나서야 법원으로부터 ‘조합장 회장에 자격 있다’는 판결을 얻었다.
그러나 그는 그 후에도 자신이 공석일 때 벌어졌던 의문점에 대한 진실을 밝히려 했는지 많은 소송을 당시 조합회에 걸었다. 소송을 개인적으로 하다보니 분양받은 아파트 등 모든 재산을 소송비로 날린 상태였다. 그러던 중 불행하게도 그는 2002년 11월 급성 간질환으로 사망했다.
그 후 어느 누구도 이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지 않다가 2003년 1월 부녀회 박정은 회장이 취임하면서 문제가 불거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누가 그녀를 이렇게 만들었는가. SK만 봐도 눈을 돌린다는 말은 참으로 서글픈 말이다. 그녀의 “정확한 얘기는 그 누구도 해주지 않을 것”이란 의미도 결국 ‘책임 소재’에 대한 회피가 아니겠는가. 어쩔 수 없다. 사람 사는 일이 내 발에 불똥 떨어지면 아프기 마련이고 피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진실은 밝혀져야 한다. 밝혀져서 억울한 사람을 구제해야 한다.
SK건설에서 조합원들에게 걷어들인 추가부담금이 핵심 사안이다. 총 1100여 조합세대 중 과반수 이상 참석, 과반수 이상 찬성이 필요하다는 규정대로라면 약 350여명의 찬성표가 필요했을 터. 이에 대해 당시 조합원 총무였던 이영재씨는 “350여표 이상의 찬성표가 나와 추가부담금을 갹출했으니 문제 될 것 없다”고 말했다.
인터뷰4 - 전농SK아파트 청산인 이영재씨(제2기 조합원 총무)
“주민을 위하는 마음, 알아줬으면 합니다”
청산인 자격으로 SK로부터 월 120만원 수수 ... 무엇이 진실인가?
이영재씨는 전농SK아파트의 조합원 시절 총무를 맡았고 얼마전까지 입주자대표회의 총무를 지낸 인물이다. 조합 시절 핵심 업무를 맡으며 많은 일을 추진했고, 그 공로도 분명 있다. 그러나, 1999년 4월부터 지금까지 SK로부터 청산인 자격으로 월 120만원의 월급을 받았다. 3년전 해체된 조합 시절 이사 4명도 월 30만원의 판공비를 받았다.
지난해 12월초 인터뷰를 완강하게 거부하던 그가 자진해 회사로 찾아오겠다는 등 적극적인 자세로 바뀐 것도 의문이다. 그리고 전농SK아파트와 관련해 지금은 SK로부터 일체의 월급도 받지 않는다고 했다. 청산인으로 등록되면 시공사로부터 월급을 받을 수 있는가?
약 4년간 SK로부터 월급을 받았다고 스스럼없이 말하는 이영재씨. 왜 그 동안 청산이 추진되지 않다가 부녀회가 법정 소송끝에 입주자대표회의의 ‘무능함’을 판결로 만들어내자 청산에 임하는 지, 추가부담금은 왜 갹출했어야 했는지 등 물어보았다.
-SK와의 현재 채무 관계에 대해 말씀해 주시죠.
조합원이 해산 될 때 당시 임원 중 한 명이 청산인이 될 자격을 얻습니다. 그 때 저와 이영진씨가 선출돼 지금까지 업무를 수행하고 있지요. 지금 SK에 줄 돈이 약 37억원정도입니다.
-지금 남아있는 조합원 통장의 금액을 말씀해주실 수 있습니까?
약 7억원 정도 남았어요. 채무가 37억원이니 많이 모자라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희가 SK에 ‘결손처리해 달라’고 요청한 상태지요. SK에서는 모두 받아내려고 하고 있지만 조합이 해체된 마당에 그 돈을 누가 줍니까.
-현재 급여를 120만원씩 받는 것으로 아는데요. 누가 주는 것이며 왜 받는 것인가요?
이는 총회에서 결정된 사항이예요. SK에서는 인증만 한 것이죠. 상근직이고 생업을 가질 수 없으니 그렇게 결정된 사항입니다.
-그럼 조합이 해체된 지 3년이 지났는데 당시 이사들에게 지금까지 월 30만원의 판공비를 지급하는 건 무슨 이유입니까?
그건 월 2-3회 생업을 포기하고 회의 등을 하는데 필요한 교통비 명목으로 지급한 것입니다. 이는 SK와 합의 본 내용이고 지금은 SK에서 더 이상 지급 못하겠다고 하고 있지요. 2004년 2월부터 지급이 중지된 형편입니다.
-완공된지 3년이 지났는데 왜 아직도 조합 청산이 이뤄지지 않고 있나요?
형사 소송 등 민원이 약 30여개가 넘습니다. 소송이 대략 지난 2003년 7월 30일부로 대부분 종결됐는데요. 지금도 1개가 남아 있습니다. 이 소송이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지금부터는 무보수봉사해야 합니다. 얼마전 국세청에서 전화 연락이 와 1천600만원을 부과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돈도 조합 통장에서 줘야 합니다.
청산을 하고 싶어도 못했던 겁니다. 형사소송이 걸려있으니 ‘책임감’ 차원에서 중간에 그만 둘 수가 없잖아요. 청산하고 나면 형사 소송건은 누가 책임져 도맡아 하겠습니까.
-조합 통장에 잔금이 있나요?
지금 현재 약 3천만원 정도 있습니다.
-추가부담금에 대해 묻겠습니다. 완강하게 거부하는 주민의 의사와는 별도로 이를 추진한 목적이 무엇인지요?
공사비가 모자라서 그랬지요. 상가를 원래 크게 설계했어요. 당시 상가 분양이 잘 되던 때라서요. 그런데 IMF가 터졌잖아요. 손실이 크게 났지요. 처음에 추가부담금으로 2천만원까지 받아내려했다는 말은 낭설입니다. 이것은 조합에서 맘대로 하는 게 아닙니다. 구청에서 승인을 해줘야 하는 것이거든요.
공사비는 한번 책정되면 변경되는 게 아니죠. 그런데 상가 손실이 커 당시 조합원들이 결정했어요. 추가부담금을 걷기로. 그래서, 조합원 700여명을 불러놓고 투표를 했지요. 과반수이상 찬성이 나와 결정된 사항이구요. 그런데, 현재 저를 대상으로 중상모략하는 것은 당시 반대표를 넣었던 사람들이라 추측됩니다.
-전농SK아파트 분양당시 시유지를 개인적으로 이영재씨가 매매했다는 설도 있는데요?
근거없는 중상모략입니다. 이영진씨는 집이 아홉채나 있다고 하고, 나는 집이 두 채 있다고 하는데 근거없는 소문일 뿐입니다. 등기부등본을 떼어 보세요. 개인적 이야기지만 제가 지금 갖고 있는 아파트도 빚덩어리입니다.
※이에 대해 부녀회에서는 이영재씨의 주택은 두 채가 확실하다고 했다. 얼마 전 한 채를 팔았다는 증언까지 했다. 두 채면 어떻고, 세 채면 어떠한가. 정당하게 돈을 벌어 집을 구입했다면 이의 제기는 터무니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영재씨의 나이는 63세. 아들은 대학을 갓 졸업했다. 1999년 조합원 시절 ‘막일’이 전업이었다는 K씨의 진술과 당시 서울 지역 아파트 가격을 감안한다면, 이영재씨의 주택 두 채 보유는 조금 무리가 있어 보이기도 한다. 어쨌든 이 점은 개인 사생활일 수 있으니 문제 삼을 수 없을 것이다.
-조합 업무 하시기 전에 직업은?
건축 노동업에 종사했었습니다.
-다른 조합들도 월급을 받는 곳이 있습니까?
있다고 들었습니다. 약간의 보수는 받는 것 같던데요.
-주민들이 왜 이영재씨에게 반감을 갖고 있을까요?
몇몇 주민들에게 피해를 끼쳐 저를 그렇게 생각하는 가 봅니다. 하지만 동네에 나가보면 지금도 제 손을 잡고 ‘수고 많다’고 하시는 주민도 많습니다. 개인감정일 뿐입니다.
-하자적출에 대해 말씀해 주시죠. 입주자대표회의 총무로 임하면서 근무 태만했다는 부녀회의 이의 제기에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하자적출과 관련해 보증기금 38억원을 찾아와야 합니다. 그 돈은 시공사로부터 찾아오는 것이죠. 이 동네 다른 아파트들은 인터넷에 그런 얘기가 일절 없는데 왜 우리 아파트만 이렇게 시끄러운지 모르겠네요. 제가 입주자대표회의 총무로 있으면서 할 일은 했다고 봅니다. SK에 600여개의 하자 포인트를 찾아 서면으로 제출했었고 답변도 왔었죠.(이 부분은 제1편에 다뤘기에 생략하기로 한다)
-당시 故허경정씨 조합장으로 선출됐는데 왜 당선되지 못했는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당시 조합 선거 유권자가 716명이 있었는데 허경정씨가 358표 이상 득표해야 했는데, 320여표 정도 나왔어요. 과반수이상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다시 투표를 했지요. 2차 투표에서는 유수현씨가 당선됐어요. 그래서 허경정씨가 ‘1차에 당선됐는데 2차까지 갈 필요 없는 것 아닌가’라며 이의를 제기, 소송까지 가게 된 거죠.
-앞으로 SK와 해결봐야 할 부분이 있다면요?
청산 등기를 해야 합니다. 결손 난 부분은 SK에서 모두 처리해 줬으면 합니다. 그렇게 요구하고 있기도 하구요. 37억원의 채무액 중 7억원은 이미 지급한 상태지요. 조합 통장에 3천만원 정도 밖에 없습니다.
-하실 말씀이 있으신가요?
저는 전농동에서만 40년 살았어요. 제가 설마 주민편이지 SK편에 서겠습니까? 지금도 저는 청산인으로 등재돼 있습니다. 당시 회장 직무대행이었던 강신옥 변호사도 허경정씨가 추천해 준 인물입니다. 제 마음은 우리 단지를 위해 시공사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은 모두 찾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오해와 갈등으로 빚어진 결과지만 언젠간 알아줄 날이 오겠지요. 제가 잘못한 사항이 있으면 달게 책임을 지겠습니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재개발 사업은 자리싸움이다”고 말했다. 말이 주민을 위하는 것이지 실상 그렇지 않다는 내용의 언급이다. 의미심장한 말이다. 그는 인터뷰 내내 다소 어눌한 말투로 동문서답을 했다. 핵심을 피해가는 듯한 인상이 짙었다.
# 기자의 눈- SK는 진실을 밝혀라
전농SK아파트를 취재하면서 느낀 것은 드라마 소재로 사용해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는 것이었다. 만약 SK와 정계가 연루돼 있고, 추측대로 SK 비자금이 이 곳에서 조성된 것이라면 한편의 멋진 시나리오가 탄생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SK건설과 전화통화를 했다. 지금은 모두 담당인원이 교체된 상황이다. 담당 부장도 “아무것도 모른다”고 운을 뗐다. 그러나 기자는 전농SK아파트 조합 시절 문제에 대해 묻고 싶다는 질문을 던졌을 때, 그는 “추가부담금 때문에 그러느냐”며 묻지도 않은 말을 했다. 증거 소멸을 우려해 인터뷰 요청은 배제하기로 했다.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일. 우리 주위에는 너무 많다. 상식이 통하지 않고 평범한 진리를 깨달으며 사는 사람이 우매한 인간이 되는 시대다. 뭔가 약삭빠르고 눈치가 빨라야 밥이라도 먹고 살며 저축이라도 하는 통탄의 시기다.
국내 모든 조합아파트가 SK아파트같은 식으로 처리된다면 정부의 10.29 부동산 정책 발표로 가뜩이나 조합아파트의 위축을 가져오고 있는데, 그 누가 조합원을 구성하려 하겠는가. 완공을 코 앞에 두고 시공사의 횡포로 ‘돈 안내면 집열쇠 안준다’는 배째라식의 무식한 작태는 도대체 어디서 배운 것인지... 아무리 비즈니스를 목적으로 하는 엘리트 집단 대기업이라지만 생각해 낸다는 것이 이 정도란 말인가.
수십년간 가꿔온 텃밭을 시공사에 넘기며 조합원들은 내 땅에 많은 주택을 건설한다는 일종의 ‘봉사심’도 있었을 것이다. 이익배당금이 있건 없건 말이다. 물론, 일부는 돈벌이에 급급한 조합원도 있었을 터. 그러나, 시공사는 그들에게 자신의 브랜드를 알리며 조금이라도 이익금을 배분해 줄 생각은 않고, 권모술수로 몇 명을 자기 식구로 만들어 큰 이익을 보려한 듯 하다. 이러한 작태는 이제 사라져야 할 때다. 또한, 힘있는 자에 붙어 콩고물이라도 먹고자 아양떠는 구시대人들은 이제 이 사회에서 영원히 퇴출되야 한다. 설사 조합원 과반수이상의 찬성이 있었다 해도 가구당 수백만원을 단시간에 만들어내라는 건 분명 대기업의 횡포다.
추가부담금도 그렇다. 조합원들은 자기 땅에 아파트를 지으면서 수익금은커녕, 추가금을 더 지불해야 한고 하면 어느 누가 달갑게 맞겠는가. 그러나 조합 총회에서는 과반수이상이 찬성표를 던졌다. 입주가 코앞인 상황이었다. 조합원에게는 ‘새집입주’가 더 매력적으로 작용했으리라. 상가가 분양되지 않은 것이 어찌 조합원들의 탓일까.
해당구청의 무관심과 이익집단의 술수, 더 나아가 돈벌이에 급급한 주체세력의 모럴해저드가 빚어낸 ‘박자는 잘맞지만 잡음많은 LP음반’같단 생각이 든다.
# 조합원 추가부담금에 따른 안내문
조합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1992년 재개발 사업을 시작한 저희 전농4구역 재개발사업이 그 동안의 험난한 사업 추진 과정을 무사히 완료해 지난 7월 6일 준공검사를 마치고 오는 7월 20일부터 입주를 하게 됐습니다.
약 8년 이상이나 걸린 험난한 과정 속에서 다른 재개발사업에 비해 모범적이고 우수한 성과로 완수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조합원 여러분의 한결같은 성원과 관심이었다고 사료됩니다. 조합집행부와 시공사인 SK건설에서는 이에 깊은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재개발 사업의 추진과정에서 최선을 다하였음에도 예기치 않았던 소송이 발생하였고 IMF 영향으로 부동산 경기가 악화되어 상가도 미분양이 발생해 조합과 시공사 간에 약정한 공사비에서 약 94억 저오박 부족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이에 조합에서는 3차례의 조합원 총회를 개최하여 총회에서 “조합에서 소송비용 36억과 상가분양 손실 예측분 중 29억 총 65억원을 부담하되, 소송 및 상가분양의 결과에 과부족이 발생시에도 조합은 65억원만을 부담하고 나머지는 SK건설에서 책임진다”고 결의했습니다.
총회에서 결의하신대로 조합과 시공사는 합의서를 작성하여 공증까지 마쳤으므로 조합원 여러분은 더 이상의 추가 부담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이에 따라 조합원별 부담액은 타 재개발사례와 법원의 결정문에 의거, 24평A형: 4,101,000원, 24평B형: 4,145,000원, 33평A형: 5,590,000원, 33평B형: 5,583,000원, 42평: 7,231,000원으로 결정했고 해당 부담금은 평화은행 060-01-****-*** SK건설주식회사 명의 계좌에 입주전까지 입금해 주시기 바랍니다.
부담금을 납부하지 아니한 조합원은 입주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입주지정기간 이후에는 연체이율 17%를 적용한 연체이자가 발생하오니 이점 유념하시어 입주에 차질이 없도록 조치하시기 바랍니다.
조합 여러분의 현명한 판단에 따라 조합과 시공사는 부담금 문제 등 제반 문제를 원만히 해결했으므로 앞으로 저희 조합과 시공사에서는 조속한 업무 처리를 통해 분양처분 및 등기절차를 마치고 조합원 여러분의 재산권 행사에 지장이 없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조합원 여러분의 건강과 가정의 행운을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2000년 7월 15일.
시행자: 전농4구역주택재개발조합 조합장 직무대행 강신옥(변호사)
시공자: SK건설주식회사 대표이사 사장 문우행
※추가부담금과 관련한 문제의 안내문이다. 이영재씨는 “당시 조합총회 과반수이상 찬성을 통해 이 금액을 산정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상가 미분양이 될 것을 예측못한 것은 조합원의 실수였다”며 “그래서 이 문제를 조합총회를 통해 추가부담금을 지급키로 한 것”이라고 밝혔다.
SK에서는 이 아파트를 담당했던 부장이 이사로 승진할 만큼 큰 이득을 봤을 텐데(당시 2000년은 IMF로 인해 사회전반에 구조조정이라는 칼날이 휘몰아칠 때였다), 어찌해서 추가부담금을 갹출했을까.
# 전농SK아파트 일지
1997.3.10 착공
1998.10.15 총회에서 조합장 선거로 유수현 조합장 선출
1999.7.26 조합장직무집행정지 가처분 결정
2000.3.31 조합장 직무대행자 강신옥(변호사) 선임
2000.7.6 준공
2001.8.14 대의원회의 개최로 조합해산 결의
2001.9.6 청산인 등기(청산인대표: 이영재, 이영진)
2002.1.11 대법원 확정판결(조합장 당선자: 허경정)
2002.4.3 집단민원제기(김홍규외 47명)
고구마 기자.
추가부담금외 공사비 인상, 등기비 갹출 ... SK는 진정 적자였나?
SK에 대항하던 ‘독립투사’ 別世 후 주민들 ‘조용’
지난 1월호에 이어 이번 호에서는 전농SK아파트 조합 시절로 돌아가 추가부담금 및 회장 선출과 관련해 의문을 제기하고자 한다. 전농SK아파트에서 정당하게 회장에 선출되고도 임할 수 없었던 故허경정씨를 비롯, 총 1100여 세대에게 가구당 400-700만원을 갹출한 SK건설에도 초점을 맞췄다.
전편이 ‘하자적출’과 관련해 SK에 물음표를 던졌다면 제2편에서는 과거로 돌아가 조합시절 행해졌던 문제점에 대해 파악했다. 약 10여년간 조합원을 거치면서 숱한 데모와 폭력 시위로 얼룩지기도 했던 전농SK아파트. 지금은 “생각도 하기 싫다”는 주민이 대다수다. 그만큼 뭔가 석연찮은 점이 남아 있다는 얘기일 게다.
취재 중 중요 취재원이 사망하거나 대체로 중요 사안에 대해 함구로 일관해 어려움이 많았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故허경정씨외 가장 많은 사실을 알고 있을 법한 조합원 시절 총무로 재직했던 이영재씨의 행동변화다.
‘기사에 대해 소송을 제기하겠다’는 강경한 모습에서 2004년 1월초 본지에라도 찾아와 취재에 응하겠다는 식으로 바뀌었다. 그의 행동 변화는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아울러, 허경정씨의 부인과 조합원 시절 감사를 지낸 노인정 회장, 임원이었던 K씨의 생생한 증언을 곁들였다.
한편, 제1편에 언급했던 각종 법정 소송건은 모두 일단락 됐다. 입주자대표회의는 부녀회의 손을 들어 ‘해체’됐으며, 부녀회에 걸었던 배임혐의와 명예회손도 각각 ‘혐의없음’과 고소 취하의 결과를 가져왔다. 그러므로 이제 법정 소송은 SK와 부녀회의 ‘하자적출에 관한 보상 문제’건 만 남은 셈이다.
드라마같은 이야기다. 드라마에도 주연과 조연이 있듯, 이해를 돕기 위해 본 기사에 언급되는 인물에 대해 다소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아울러, 모두 실명으로 기사화했음을 밝힌다.
故허경정 - 전농SK아파트에서 지난 98년 조합장 선거로 선출됐으나(1차 투표) 당선되지 못하고 소송을 제기, 결국 2000년 아파트 완공 후(조합원 해체 후) 조합장으로 선출된다. 그는 2002년 11월 급성 간경화로 사망한다.
유수현 - 허경정씨 선출에 이의를 제기, 2차 투표때 선출된 조합장으로써 허경정씨와 소송에 휘말리게 된다. 그는 뇌물수수로 징역 2년, 집행유예 4년의 선고를 받고 조합장에서 물러난다.
이영재 - 제2기 조합원 시절 총무를 맡았던 인물로 현재 청산인 자격으로 있다. SK와의 일련의 사태에 대해 가장 많은 부분을 알고 있는 인물이다.
박정은 - 부녀회 제2기 회장으로써 현재 전농SK아파트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문제를 터뜨린 장본인이다. 그의 지적이 없었다면 SK와의 추가부담금 및 하자적출 등 부당함을 알리지 못했을 것이다.
인터뷰1 - 전농SK아파트 조합 총회 구성 당시 임원 K씨
“너무나 많은 의문이 남지만 지금은 잊고 싶습니다”
왜 청산인은 SK에서 월급을 받았을까?
제1편에서 다뤘던 ‘하자적출문제’를 배제하고 나니, 지난 90년대초 조합원 구성시절부터 2000년 7월 분양 시기까지 있었던 일련의 의문점 등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 중 익명을 요구한 K씨는 조합원 당시 임원을 역임한 인물로 비교적 소상한 이야기를 들려주어 가감없이 게재한다. 그러나, 그도 “아직도 의문점이 많이 남는다”“모르는 부분이 있다”며 기자에게 보다 상세한 내용을 들려주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워했다.
-SK건설을 사업자로 선정한 것은 어떻게 이뤄진 것입니까?
당시 조합 총회를 열어 선정한 것이죠. 라이프와 SK 등 세 곳이 입찰에 응했는데, 라이프는 부도 날 상황이어서 SK로 선정했어요. 대기업이잖아요.
-SK건설에서 지불하라고 명시한 추가부담금과 관련해 묻겠습니다. 이러한 규정이 조합원과 SK건설과의 시공 계약 당시 규정에 명시돼 있었나요?
처음 시작할 당시, SK에서는 ‘일절 추가부담금이 없다’고 했었습니다. 훗날 계약상에 물가연동제에 의해 추가부담금이 있을 수 있다고 했지요. 그러한 규정이 있긴 했어요.
-지난 98년 조합장 선거시 故허경정씨가 과반수 이상 찬성으로 선출되고도 왜 회장에 당선될 수 없었나요?
반대파(K모씨는 그들을 반대파라 일컬었다)들 때문이죠. 그들의 이유는 뭐... 하여튼 그것으로 인해 소송을 제기 했죠. 1심, 2심 모두 이겼어요. 그런 식으로 시간이 흘러 아파트를 다 짓고 故허경정의 조합장 선출 결정이 났지요. 그러나 아파트 분양되고 나서 그게 무슨 소용이예요.
-역대 조합장들은 어땠죠?
지난 96년 조합 승인 후 제1기 조합장이 김봉길씨였어요. 정식으로 조합장을 했지요. 조합장을 하다가(2년 임기) 지난 98년 다시 조합장을 뽑았는데... 김봉길씨가 다시 입후보하겠으니 도와달라 했었죠. 근데 이상하게도 선거 이틀 전에 입후보 사퇴를 하더군요. 그 이유는 지금까지 몰라요.
그 즈음에 시의원이던 최종근씨가 재개발에 개입하면서 많은 변화가 생겼죠. 이분은 고문 정도 했어요. 그 때 이영재씨가 총무를 맡았죠. 그러던 중 강신옥 변호사가 회장 직무대행을 했고. 98년도 얘깁니다.
※여기서 약간의 상황 설명이 필요하다. 제2기 조합장 선거는 98년에 열렸는데, 조합장 임기가 2년이라 2000년 분양을 앞두고 마지막 조합장 선거를 한 것이었다. 그런데 故허경정씨가 조합 총회 투표때 과반수 이상 찬성으로 결정이 됐는데도, 이의를 제기한 주민이 있어 다시 투표를 했다. 2차 투표때 유수현씨가 당선됐는데 이를 두고 故허경정씨측이 받아들일 수 없어 다시 유수현씨에게 업무중지가처분신청을 내게 된다. 그 소송을 건 사람이 바로 K씨다. 故허경정씨는 결국 분양되던 2000년 조합장으로 인정된다는 판결을 받아 조합장에 선출됐으나, 이미 아파트가 완공돼 무용지물이 됐다.
아울러, 이영재씨 진술에 의하면 김봉길씨는 몸이 아파 1년 6개월만에 조합장을 그만뒀다고 했다. K씨는 “김봉길씨가 당시 제2기 조합장 선거에 재입후보하겠다”고 한 것으로 보아 몸이 아파 제1기 조합장 사표를 냈다는 이영재씨의 말과 다른 부분이다.
-어떤 변화가 있었다는 것이죠?
그 분이 유도하는대로 조직이 구성되고 그 쪽으로 집합되면서 모이고 그랬죠. 예전에 하던 분들이 많이 바뀌었어요.
-반대파라 일컫는 그 분들이 故허경정씨를 반대한 이유는 구체적으로 뭔가요?
故허경정씨가 신임을 못얻은 면도 있었어요. 좀 그런게 있었어요. 그래서 ‘故허경정은 안된다’그런 사람이 있었고, 이런 걸 밝힐 사람은 ‘故허경정 밖에 없다’는 사람도 있었던 것이고. 파가 갈렸죠.
-당시 구성됐던 조합원들 총인원은 몇 명 정도 됐나요?
임대아파트까지 2700세대 정도 될 거예요. 870세대는 시에서 분양한 임대아파트구요. 추가부담금은 1100세대 정도 될 거예요.
-최대 핵심 사안이 추가부담금인데요. 추가부담금에 대해 반대하셨나요?
2000년 7월 당시 우리는 ‘절대 내선 안된다’ 그랬죠. 처음에는 가구당 2천만원까지 얘기가 나왔었어요. 인쇄된 문건으로 나돌기도 했어요. 우리는 주민들에게 ‘이걸 통과시켜선 절대 안된다’고 했죠. 그러나 당시 조합을 운영하던 사람들은 ‘내야 한다’고 주장했고요.
그러던 중 당시 추가부담금을 반대하던 대의원 전부를 제명시켰어요. 강신옥 변호사가 실권을 갖고 있을 때 였고, 우두머리는 유수현씨였죠. 대의원들이 이를 저지하려고 총회에 참석하려고 했는데 용역을 시켜 제지하고 그랬죠. 그 용역이 깡패였다는 얘기도 있었구요.
대의원 총회 때 KBS에서 취재를 나왔는데도 그 사람들은 일사천리로 모든 사안을 통과시키더군요. 여러 가지가 많은데 얘기하기가 그러네요.(웃음) 궁금한 건 많은데...
100% 조합원 모두 추가부담금을 냈습니다. 내지 않으면 SK에서 집열쇠를 주지 않았으니까요. 총회때 밀고 들어가서 그거 안된다고 하려고 했는데, 결국 못들어가서 결정된 거죠.
-전농동 인근 주변에도 이런 경우가 있나요?
우리도 그것이 궁금해 조사해 봤어요. 인근 S아파트는 배당금을 60-70만원씩 줬는데 왜 우리만 이러느냐고 외쳤죠. 그리고, SK K모 부장은 이거 맡고 나서 이사로 진급했다더군요.
-그가 진급한 이유에 대해 아십니까?
그건 모르죠. 진급이란 게 뭔가 잘한 일이 있으니 주는 상 아니겠어요?
-유수현씨는 누구인가요?
故허경정씨가 조합장으로 선출됐을 때 이의를 제기한 인물인데요. 뇌물수수로 구속됐던 자로 징역 2년 집행유예 4년 받은 적도 있지요. 하청업자에게 돈을 받은 혐의였어요. 조합장이었는데 뇌물 때문에 그만 뒀죠.
-현재까지 조합 시절 청산인으로 선정된 이영재, 이영진씨 등은 지금까지 120만원의 월급을 받았다고 하던데요.
옛날 조합원 시절 이사했던 분들 4명이 매월 30만원씩 판공비로 SK로부터 돈을 받았다고 들었는데요. 왜 지금까지 받는지 이상하네요. 이영진 이영재씨가 돈을 받았다는 것은 요새 알았어요. 지금까지 몰랐죠. 의문점은 많아요. 정말 이상해요. 청산 총회를 해서 선출됐다고 했다는데, 자기들은 총회를 모두 개최 했데요. 구청에서도 안했다는 데 도대체 어디서 한 지 모르겠네요. 주민들 상대로 해야 하는데, 하지 않았어요.
-왜 주민들은 그러한 의문점을 갖고도 대처하지 않으셨나요?
주민들이 이제 먹고 살만 하니까 신경을 쓰지 않은 거죠. 저부터도 그런 것 신경쓰고 싶지 않거든요. 진절머리나는 일이 너무 많아서인지, 귀찮아서인지는 몰라도 생각도 하기 싫은 거죠. 조합시절에도 그랬어요.
이제는 주민들이 아파트에 신경 쓰기가 귀찮은 거예요. 나서서 해봐야 될 일도 없어요. 주민들이 단합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을 텐데 말예요.
강신옥 변호사가 직무대행 했을 때도 주민들이 모였다면 이렇진 않았을 거예요. 주민 참여가 너무 없었죠. 바른 말 하면 잘라버리고, 그 사람들 쪽으로 포섭되다 보니까 부당한 걸 알아도 말을 못해요. 말하면 그 사람만 병신되는 거죠. 건설 단가 매길 때만 해도 지분율하고 실제와 다르다고 몇 번을 얘기했는데... 지분율을 알아야 하는데 말예요.
하여간 SK에서 머리를 써서 한 것 같아요. 추가부담금은 안된다고 했는데도 통과가 됐죠.
-만약, 추가부담금이 부당한 것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소송을 걸어서라도 찾아야죠.
-분양금에 대한 불만은 없었나요?
그건 없었어요.
-당시 추가부담금으로 400-700만원은 꽤 큰 돈인데요. 지금처럼 아파트 값이 비쌀 때도 아니고요?
당시(2000년 7월) 42평이 2억이 안됐었어요. 지금은 거의 2배로 뛰었죠. 지금으로 비교하면 가구당 1400만원을 낸 것과 같은 이치죠. 故허경정씨가 참 애쓰다가... 안됐죠.
-당시 회의록을 갖고 계신가요?
지방으로 이사가면서 많이 버렸어요. 진절머리가 나서...
-현 박정은 부녀회장은 어떤가요?
당시 조합원이었는데, 관여를 안했죠.
-혹시 이영재씨의 前직업을 알 수 있을까요?
이영재씨는 1기때 아무 직책도 없었어요. 청산인은 공식적으로 뽑은 게 아닙니다. 그 양반 직업은 한마디로 소위 ‘막일’이었죠. 아궁이도 고쳐주고 하는.
-그 얘기는 이영재씨가 회계나 경리 등 재무 관련 업무 경험이 없다는 의미인가요?
그렇죠.
-근데 어떻게 청산인으로 선정 됐을까요?
SK에 많이 도움을 주니까요.
-추가부담금을 통과시키려고 노력한 자가 있나요?
많았죠. 주민들 중 “저런 식으로 하면 재개발이 늦어진다.” “주민들이 손해본다”라고 말한 사람도 많았죠. 강신옥 변호사가 직무대행할 때였는데, 주민들도 당시 우리를 매도한 게 뭐냐면 이거(추가부담금)라도 빨리 납부해서 입주해야 하지 않느냐 한거죠. 주민들 의식도 문제예요.
-‘그 쪽 편’이라 언급하시는데 구체적으로 누구를 지칭하는 건가요?
당시 집행부를 말하는 겁니다. 유수현, 이영진, 이영재 등 당시 집행부였죠. 하여간 당시 회의할 때도 못들어가고... 그랬죠.
-상식적으로 이해안되는 부분이 많은데요?
그래서 故허경정씨가 이거 밝히려다가 그만 돌아가신거 아닙니까. 안타깝죠.
-지금은 그들과 어떤 관계로 지내시나요?
지금은 밥도 먹고 그래요. 한때 원수진 거 다시 원수지기도 그렇고요. 그래도 진실은 밝혀져야 합니다.
-동대문구청의 대응은 있었나요?
청량리경찰서나 동대문구청 도시정비국에서 개입하려고 하나요? 안하죠. 구청에 쳐들어가서 싸우기도 했는데 원칙대로만 얘기하죠.
-추가부담금에 대해서 구청에서는 어떤 반응을 보이던가요?
그건 주민 총회 거쳐서 해결하라고 했죠. 그래서 우리가 구청과 조합회에게 주민 총회를 거쳐 해결할테니 도움을 달라고 했는데 답변이 안왔어요.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
난 이제 떠난 사람이잖아요. 지금은 사실 SK아파트 하면 쳐다보기도 싫어요. 청량리 경찰서에 제 친구가 있는데 그런 말을 하더군요. 하루라도 빨리 손을 떼라고. 그런 맘가짐으로는 힘들다고 하더군요. 배짱도 없어서.
인터뷰2 - 전농SK아파트 노인회 신양호 회장
“도대체 수백만원씩 추가부담금을 왜 걷었는지 모르겠다니까”
SK, 등기비용으로 가구당 10만원 추가 갹출
SK 담당 임직원끼리 소송 걸어 퇴사했다는 주장도
노인회에 계신 분들은 조합 시절 임원이건 아니건 관여했을 분이 많을 것 같았다. 특히, 당시 조합원 감사였던 신양호 노인회장과 부조합장이었던 김홍규씨의 발언이 꽤 궁금했다. 그들 이야기의 핵심은 “추가부담금은 억울했다”라는 것이다. 다행히 기자가 찾아갔을 무렵, 신회장과 김홍규씨 모두 자리에 있어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추가부담금을 모두 내셨는데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가요?
그것에 대해 소송을 걸고자 했는데 허회장이 죽었잖아. 그래서 못했지. 참 안타까워. 그 사람이 노력한 걸로 치면 다 말로 못해. 옷장 하나 가득 서류가 있을 거야. 아마.
-동대문구청의 행정조치는 어떠했습니까?
구청에서 뭐 신경쓰나. 신경안썼지.
-지금 조합 통장에 남아 있는 돈이 있긴 한데 SK와의 채무관계로 인해 조합원에게 줄 수익배당금은 전혀 없다던데요.
지금 7-8억원 정도 남아있다고 하는데 말야. 이게 뭐 우리한테 나눠주겠어?
-당시 SK건설 김모부장은 이를 계기로 승진 했다던데요? 알고 계시나요?
알지. 그 사람 이 일로 인해 미아지구 북한산시티까지 맡았다지. 근데, 거기서도 주민 반대가 극심해서 뭐 사표냈다는 말이 있더군. 같은 SK 직원끼리 소송에 휘말렸다는 얘기도 있고.
-SK건설 직원이 같은 회사 상사를 향해 소송을 걸었다는 건가요?
자세한 내막은 잘 몰라. 그냥 그렇게만 알고 있지.
-인근 아파트에서는 조합원들에게 수익배당금이 돌아갔다던데요.
돌아갔다지. 인근 S 아파트는 가구당 300만원인가 돌아갔고, C 아파트는 가구당 180만원씩 줬데. 샤시도 해주고 말야. 이게 말이냐 되냐 말이야. 우린 왜 그것도 모자라 돈을 걷었냐는 거야. 그리고 이거 알아? 당시 등기비용은 SK에서 가구당 10만원을 더 걷었어. 등기대행 비용이지. 난 내가 직접 가서 하니까 몇천원 들더구만. 도둑놈들.
※열노하신 분들이라 인터뷰를 길게 할 수 없었다. 안타깝지만 예전 일을 기억해내시는 일도 힘드셨으리라 여겨진다. 인터뷰 당시 노인회에는 다섯분 정도의 노인정 회원이 계셨는데 모두들 추가부담금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분들은 故허경정씨와 같은 기백을 가진자가 없어 모두들 ‘그날의 일들을 잊고 산다’고 했다.
가구당 수백만원, 총 70억원이상의 금액을 고스란히 SK에 납부하고도 누구하나 이의를 지금까지 제기하지 않고 있는 셈이다. 추가부담금 외에도 등기비용으로 10여만원을 납부한 것도, 공사 중에도 단가를 올려줬다는 부녀회의 얘기도 의문점이다. 귀찮아서일까, 잊고 싶은 마음이 커서일까. 왜 그들은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사안에 대해 대응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인가.
인터뷰3 - 전농SK아파트 조합당시 前조합장 故허경정씨 부인
“진실을 밝히려는 자만 손해 보는 세상입니다”
“너무 늦게 오셨네요. 기자님”
故허경정씨 부인의 성함은 밝힐 수 없다. 심리적 육체적 스트레스가 심해서인지 그녀는 ‘심장질환’을 앓고 있다고 했다. 기자의 조심스런 질문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을 보면 심상치 않아 보였다.
위에 K씨가 언급했던 것처럼 ‘반대파’라 일컬어지는 ‘SK건설 및 그들’과 대항해 싸운 ‘독립투사’가 바로 故허경정씨다. 지난 2002년 11월 갑작스레 간질환으로 사망하고 아무도 이에 대해 언급하는 사람이 없어 그녀도 이제는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은 과거”라며 인터뷰를 거부했다.
故허경정씨는 원래 술을 좋아하긴 했으나 건강했다고 한다.
갑작스레 일어난 일이라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故허씨부인. 조합장으로 판정이 나면 무엇하랴. 심신이 지칠대로 지친 후였는데... 허씨부인은 결국 SK에 소송을 걸어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그러나 SK측에서는 “조합장 선출 시기부터 분양 시기까지의 월급분만 지급하겠다”고 말할 뿐.
허씨부인은 인터뷰 내내 ‘잘 알지 못해 말할 게 없다’는 말을 자주 사용했다. 어렵게 그녀를 찾아간 날 날은 매우 흐렸다. 먹구름에 그날의 상처를 묻고 싶은 지, 그녀는 연신 창 밖을 보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언제 이사 하셨나요?
2003년 12월에 했어요. 집이 경매에 부쳐져서 어쩔 수 없이 나오게 됐죠.
-가장 억울하다고 생각되는 점이 뭔가요?
조합장으로 선출되고도 출근하지 못한게 억울합니다. 애아빠는 그랬어요. 소송을 걸더라도 정정당당하게 들어가겠다고. 과반수 찬성이 아니라는 허무맹랑한 얘기를 들으니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애아빠 성격에 가만있었겠습니까. 결국 최종 판결났잖아요? 아파트 다 짓고 나서 조합장 자격이 있다고 판결이 나면 무엇합니까?
-故허경정씨가 갖은 소송으로 고생할 때 부인께서는 어떤 말을 해 주셨나요?
그만 두자고 했죠. 지겨우니까. 남들은 다 안하는데 혼자 싸우는 게 뭐 보기 좋겠어요. 도움 주는 사람은 있었지만 지금 보세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잖아요. 진실을 밝히려는 자만 손해 본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게 된 거예요.
-생전에 부군에 대해 말씀해 주신다면?
담배 안피던 분이 담배를 펴댔지요. 어느날 아들 권유로 건강진단을 받았는데 간경화가 나왔어요. 그 후 29일만에 돌아가시더군요. 허무했죠. 소송 준비를 다 해놓고 돌아가셔서 참 안타깝지요. 그 분은 생전에 유통업을 하시면서 직원을 한 때 50여명 거느릴 정도로 번성했던 사업가였어요.
소송비로 다 날렸죠. 이러한 소송을 할 적에는 미아북한산시티SK아파트와도 연대해 자주 왕래하기도 하더군요. 거긴 지금 어떻게 진행되나 몰라. 아직 등기도 안났다던데... 그 분은 소송을 시작하면서 항상 ‘아는게 힘이고 모르고 당하지 말자’는 말을 입버릇처럼 말씀하셨지요. 기자님, 너무 늦게 오셨네요.
-이 곳에서 오래 사셨나요?
한 20여년 될 거예요.
-그럼 소송은 모두 현재 중단된 상태인가요?
복사비만 해도 엄청납니다. 집이 경매에 넘어갈 만 하죠. 소송하는 데 돈이 얼마드는 줄 아십니까? 이걸 저 혼자 어떻게 합니까. 애아빠도 결국 못한 걸을... 중단할 수밖에 없죠. 서류는 모두 캐비넷안에 있어요. 무슨 서류가 있는지도 몰라요.
-처음부터 부군께서 조합장들을 향해, 또는 SK를 향해 대응하신건가요?
처음엔 아무것도 모르는 그저 평범한 주민이었죠. 그런데 조합에 나서게 되고부터 잘못된 게 눈에 보이더랍니다. 그래서 시작한 거지요. 그 때부터 우리 가정의 불운은 시작된 거라 생각합니다.
아무리 기자 양반이 취재해 봤자 이건 밝혀지지 않습니다.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테니까요.
-당시 주민들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당시 주민들 모두 동조하긴 했지요. 그런데 나서는 사람이 없어요. 같은 주민끼리 얼굴 붉히기 싫다는 것이죠. 순박한 건지 순수한건지는 몰라도... 지금 전 신문이나 방송 뉴스도 안봅니다. 아직 상처가 아물지 않았나 봐요. 잊고 살고 싶은게 아니라 들추기 싫다는 말이 더 정확할 듯 싶네요. 말로 다 못합니다.
-청와대에 투서도 넣으셨다고요?
그랬죠. 고충처리위원회, 청와대, 경찰 등 모두 넣었어요. 결과가 어땠을까요? 감감 무소식이죠. 어디 이런 문제로 나서주기나 하겠습니까.
※그녀는 다른 기자들은 아직 찾아온 바 없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대화가 무르익을 무렵, 이야기를 조금씩 풀어놓았다.
-추가부담금 결의시 왜 저지하지 못했습니까?
남편만큼 아는 게 없어 정확히 대답할 수 없는 게 안타깝군요. 그 때 당시 조합 대의원 회의때 였을 겁니다. 대의원들이 제명당해서 회의에 참석할 수 없는 상태였는데, 그래도 참석하고자 했었지요. 그러나, 용역을 불렀는지 어쨌는지 무력으로 제지당했죠. 총회에 참석조차 못했는데 무슨 저지를 했겠습니까.
-SK에서 보상금을 받으셨다는데요.
2000년 남편을 조합장으로 판정한다는 판결문이 난 후 SK에 소송을 걸었어요. 결국 조합장 시절부터 당선됐을 때까지의 봉급분을 계산해 주더군요. 더 이상 그건 언급하고 싶지 않습니다.
-소송 제기 후 SK측에서의 반응은 어땠나요?
나름대로 친절하더군요. ‘힘드시겠어요’라는 위로도 해주고. 남편이 살아있을 때와 돌아가시고 나서의 행동이 하늘과 땅 차이더군요. 신기하죠? 태도가 변하니까.
-하고 싶은 말씀은?
동네 분들은 남편을 똑똑하다 했습니다. 그러나 똑똑한게 아닙니다. 남들처럼 살면 고달프진 않을 거예요. 제가 지금 혈압이 높아 고생하고 있어요. 남편 생존시에도 해결 안된 문제가 다시 해결되리란 생각은 안합니다. 다시 도마위에 오르는 것도 원치 않고요. 지금은 제가 누구의 험담도 못하는 입장입니다. 다른 분들도 만났겠지만 정확한 얘기는 해주지 않았을 겁니다. 이해합니다. 지금은 SK만 보면 눈도 돌릴 지경이지요.
※故허경정씨는 지난 98년 조합장 선거 당시 과반수이상 찬성되고도 회장에 당선되지 못했다. 이유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허경정씨는 그 후 소송을 걸어 결국 2000년 전농SK아파트가 완공되고 나서야 법원으로부터 ‘조합장 회장에 자격 있다’는 판결을 얻었다.
그러나 그는 그 후에도 자신이 공석일 때 벌어졌던 의문점에 대한 진실을 밝히려 했는지 많은 소송을 당시 조합회에 걸었다. 소송을 개인적으로 하다보니 분양받은 아파트 등 모든 재산을 소송비로 날린 상태였다. 그러던 중 불행하게도 그는 2002년 11월 급성 간질환으로 사망했다.
그 후 어느 누구도 이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지 않다가 2003년 1월 부녀회 박정은 회장이 취임하면서 문제가 불거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누가 그녀를 이렇게 만들었는가. SK만 봐도 눈을 돌린다는 말은 참으로 서글픈 말이다. 그녀의 “정확한 얘기는 그 누구도 해주지 않을 것”이란 의미도 결국 ‘책임 소재’에 대한 회피가 아니겠는가. 어쩔 수 없다. 사람 사는 일이 내 발에 불똥 떨어지면 아프기 마련이고 피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진실은 밝혀져야 한다. 밝혀져서 억울한 사람을 구제해야 한다.
SK건설에서 조합원들에게 걷어들인 추가부담금이 핵심 사안이다. 총 1100여 조합세대 중 과반수 이상 참석, 과반수 이상 찬성이 필요하다는 규정대로라면 약 350여명의 찬성표가 필요했을 터. 이에 대해 당시 조합원 총무였던 이영재씨는 “350여표 이상의 찬성표가 나와 추가부담금을 갹출했으니 문제 될 것 없다”고 말했다.
인터뷰4 - 전농SK아파트 청산인 이영재씨(제2기 조합원 총무)
“주민을 위하는 마음, 알아줬으면 합니다”
청산인 자격으로 SK로부터 월 120만원 수수 ... 무엇이 진실인가?
이영재씨는 전농SK아파트의 조합원 시절 총무를 맡았고 얼마전까지 입주자대표회의 총무를 지낸 인물이다. 조합 시절 핵심 업무를 맡으며 많은 일을 추진했고, 그 공로도 분명 있다. 그러나, 1999년 4월부터 지금까지 SK로부터 청산인 자격으로 월 120만원의 월급을 받았다. 3년전 해체된 조합 시절 이사 4명도 월 30만원의 판공비를 받았다.
지난해 12월초 인터뷰를 완강하게 거부하던 그가 자진해 회사로 찾아오겠다는 등 적극적인 자세로 바뀐 것도 의문이다. 그리고 전농SK아파트와 관련해 지금은 SK로부터 일체의 월급도 받지 않는다고 했다. 청산인으로 등록되면 시공사로부터 월급을 받을 수 있는가?
약 4년간 SK로부터 월급을 받았다고 스스럼없이 말하는 이영재씨. 왜 그 동안 청산이 추진되지 않다가 부녀회가 법정 소송끝에 입주자대표회의의 ‘무능함’을 판결로 만들어내자 청산에 임하는 지, 추가부담금은 왜 갹출했어야 했는지 등 물어보았다.
-SK와의 현재 채무 관계에 대해 말씀해 주시죠.
조합원이 해산 될 때 당시 임원 중 한 명이 청산인이 될 자격을 얻습니다. 그 때 저와 이영진씨가 선출돼 지금까지 업무를 수행하고 있지요. 지금 SK에 줄 돈이 약 37억원정도입니다.
-지금 남아있는 조합원 통장의 금액을 말씀해주실 수 있습니까?
약 7억원 정도 남았어요. 채무가 37억원이니 많이 모자라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희가 SK에 ‘결손처리해 달라’고 요청한 상태지요. SK에서는 모두 받아내려고 하고 있지만 조합이 해체된 마당에 그 돈을 누가 줍니까.
-현재 급여를 120만원씩 받는 것으로 아는데요. 누가 주는 것이며 왜 받는 것인가요?
이는 총회에서 결정된 사항이예요. SK에서는 인증만 한 것이죠. 상근직이고 생업을 가질 수 없으니 그렇게 결정된 사항입니다.
-그럼 조합이 해체된 지 3년이 지났는데 당시 이사들에게 지금까지 월 30만원의 판공비를 지급하는 건 무슨 이유입니까?
그건 월 2-3회 생업을 포기하고 회의 등을 하는데 필요한 교통비 명목으로 지급한 것입니다. 이는 SK와 합의 본 내용이고 지금은 SK에서 더 이상 지급 못하겠다고 하고 있지요. 2004년 2월부터 지급이 중지된 형편입니다.
-완공된지 3년이 지났는데 왜 아직도 조합 청산이 이뤄지지 않고 있나요?
형사 소송 등 민원이 약 30여개가 넘습니다. 소송이 대략 지난 2003년 7월 30일부로 대부분 종결됐는데요. 지금도 1개가 남아 있습니다. 이 소송이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지금부터는 무보수봉사해야 합니다. 얼마전 국세청에서 전화 연락이 와 1천600만원을 부과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돈도 조합 통장에서 줘야 합니다.
청산을 하고 싶어도 못했던 겁니다. 형사소송이 걸려있으니 ‘책임감’ 차원에서 중간에 그만 둘 수가 없잖아요. 청산하고 나면 형사 소송건은 누가 책임져 도맡아 하겠습니까.
-조합 통장에 잔금이 있나요?
지금 현재 약 3천만원 정도 있습니다.
-추가부담금에 대해 묻겠습니다. 완강하게 거부하는 주민의 의사와는 별도로 이를 추진한 목적이 무엇인지요?
공사비가 모자라서 그랬지요. 상가를 원래 크게 설계했어요. 당시 상가 분양이 잘 되던 때라서요. 그런데 IMF가 터졌잖아요. 손실이 크게 났지요. 처음에 추가부담금으로 2천만원까지 받아내려했다는 말은 낭설입니다. 이것은 조합에서 맘대로 하는 게 아닙니다. 구청에서 승인을 해줘야 하는 것이거든요.
공사비는 한번 책정되면 변경되는 게 아니죠. 그런데 상가 손실이 커 당시 조합원들이 결정했어요. 추가부담금을 걷기로. 그래서, 조합원 700여명을 불러놓고 투표를 했지요. 과반수이상 찬성이 나와 결정된 사항이구요. 그런데, 현재 저를 대상으로 중상모략하는 것은 당시 반대표를 넣었던 사람들이라 추측됩니다.
-전농SK아파트 분양당시 시유지를 개인적으로 이영재씨가 매매했다는 설도 있는데요?
근거없는 중상모략입니다. 이영진씨는 집이 아홉채나 있다고 하고, 나는 집이 두 채 있다고 하는데 근거없는 소문일 뿐입니다. 등기부등본을 떼어 보세요. 개인적 이야기지만 제가 지금 갖고 있는 아파트도 빚덩어리입니다.
※이에 대해 부녀회에서는 이영재씨의 주택은 두 채가 확실하다고 했다. 얼마 전 한 채를 팔았다는 증언까지 했다. 두 채면 어떻고, 세 채면 어떠한가. 정당하게 돈을 벌어 집을 구입했다면 이의 제기는 터무니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영재씨의 나이는 63세. 아들은 대학을 갓 졸업했다. 1999년 조합원 시절 ‘막일’이 전업이었다는 K씨의 진술과 당시 서울 지역 아파트 가격을 감안한다면, 이영재씨의 주택 두 채 보유는 조금 무리가 있어 보이기도 한다. 어쨌든 이 점은 개인 사생활일 수 있으니 문제 삼을 수 없을 것이다.
-조합 업무 하시기 전에 직업은?
건축 노동업에 종사했었습니다.
-다른 조합들도 월급을 받는 곳이 있습니까?
있다고 들었습니다. 약간의 보수는 받는 것 같던데요.
-주민들이 왜 이영재씨에게 반감을 갖고 있을까요?
몇몇 주민들에게 피해를 끼쳐 저를 그렇게 생각하는 가 봅니다. 하지만 동네에 나가보면 지금도 제 손을 잡고 ‘수고 많다’고 하시는 주민도 많습니다. 개인감정일 뿐입니다.
-하자적출에 대해 말씀해 주시죠. 입주자대표회의 총무로 임하면서 근무 태만했다는 부녀회의 이의 제기에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하자적출과 관련해 보증기금 38억원을 찾아와야 합니다. 그 돈은 시공사로부터 찾아오는 것이죠. 이 동네 다른 아파트들은 인터넷에 그런 얘기가 일절 없는데 왜 우리 아파트만 이렇게 시끄러운지 모르겠네요. 제가 입주자대표회의 총무로 있으면서 할 일은 했다고 봅니다. SK에 600여개의 하자 포인트를 찾아 서면으로 제출했었고 답변도 왔었죠.(이 부분은 제1편에 다뤘기에 생략하기로 한다)
-당시 故허경정씨 조합장으로 선출됐는데 왜 당선되지 못했는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당시 조합 선거 유권자가 716명이 있었는데 허경정씨가 358표 이상 득표해야 했는데, 320여표 정도 나왔어요. 과반수이상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다시 투표를 했지요. 2차 투표에서는 유수현씨가 당선됐어요. 그래서 허경정씨가 ‘1차에 당선됐는데 2차까지 갈 필요 없는 것 아닌가’라며 이의를 제기, 소송까지 가게 된 거죠.
-앞으로 SK와 해결봐야 할 부분이 있다면요?
청산 등기를 해야 합니다. 결손 난 부분은 SK에서 모두 처리해 줬으면 합니다. 그렇게 요구하고 있기도 하구요. 37억원의 채무액 중 7억원은 이미 지급한 상태지요. 조합 통장에 3천만원 정도 밖에 없습니다.
-하실 말씀이 있으신가요?
저는 전농동에서만 40년 살았어요. 제가 설마 주민편이지 SK편에 서겠습니까? 지금도 저는 청산인으로 등재돼 있습니다. 당시 회장 직무대행이었던 강신옥 변호사도 허경정씨가 추천해 준 인물입니다. 제 마음은 우리 단지를 위해 시공사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은 모두 찾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오해와 갈등으로 빚어진 결과지만 언젠간 알아줄 날이 오겠지요. 제가 잘못한 사항이 있으면 달게 책임을 지겠습니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재개발 사업은 자리싸움이다”고 말했다. 말이 주민을 위하는 것이지 실상 그렇지 않다는 내용의 언급이다. 의미심장한 말이다. 그는 인터뷰 내내 다소 어눌한 말투로 동문서답을 했다. 핵심을 피해가는 듯한 인상이 짙었다.
# 기자의 눈- SK는 진실을 밝혀라
전농SK아파트를 취재하면서 느낀 것은 드라마 소재로 사용해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는 것이었다. 만약 SK와 정계가 연루돼 있고, 추측대로 SK 비자금이 이 곳에서 조성된 것이라면 한편의 멋진 시나리오가 탄생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SK건설과 전화통화를 했다. 지금은 모두 담당인원이 교체된 상황이다. 담당 부장도 “아무것도 모른다”고 운을 뗐다. 그러나 기자는 전농SK아파트 조합 시절 문제에 대해 묻고 싶다는 질문을 던졌을 때, 그는 “추가부담금 때문에 그러느냐”며 묻지도 않은 말을 했다. 증거 소멸을 우려해 인터뷰 요청은 배제하기로 했다.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일. 우리 주위에는 너무 많다. 상식이 통하지 않고 평범한 진리를 깨달으며 사는 사람이 우매한 인간이 되는 시대다. 뭔가 약삭빠르고 눈치가 빨라야 밥이라도 먹고 살며 저축이라도 하는 통탄의 시기다.
국내 모든 조합아파트가 SK아파트같은 식으로 처리된다면 정부의 10.29 부동산 정책 발표로 가뜩이나 조합아파트의 위축을 가져오고 있는데, 그 누가 조합원을 구성하려 하겠는가. 완공을 코 앞에 두고 시공사의 횡포로 ‘돈 안내면 집열쇠 안준다’는 배째라식의 무식한 작태는 도대체 어디서 배운 것인지... 아무리 비즈니스를 목적으로 하는 엘리트 집단 대기업이라지만 생각해 낸다는 것이 이 정도란 말인가.
수십년간 가꿔온 텃밭을 시공사에 넘기며 조합원들은 내 땅에 많은 주택을 건설한다는 일종의 ‘봉사심’도 있었을 것이다. 이익배당금이 있건 없건 말이다. 물론, 일부는 돈벌이에 급급한 조합원도 있었을 터. 그러나, 시공사는 그들에게 자신의 브랜드를 알리며 조금이라도 이익금을 배분해 줄 생각은 않고, 권모술수로 몇 명을 자기 식구로 만들어 큰 이익을 보려한 듯 하다. 이러한 작태는 이제 사라져야 할 때다. 또한, 힘있는 자에 붙어 콩고물이라도 먹고자 아양떠는 구시대人들은 이제 이 사회에서 영원히 퇴출되야 한다. 설사 조합원 과반수이상의 찬성이 있었다 해도 가구당 수백만원을 단시간에 만들어내라는 건 분명 대기업의 횡포다.
추가부담금도 그렇다. 조합원들은 자기 땅에 아파트를 지으면서 수익금은커녕, 추가금을 더 지불해야 한고 하면 어느 누가 달갑게 맞겠는가. 그러나 조합 총회에서는 과반수이상이 찬성표를 던졌다. 입주가 코앞인 상황이었다. 조합원에게는 ‘새집입주’가 더 매력적으로 작용했으리라. 상가가 분양되지 않은 것이 어찌 조합원들의 탓일까.
해당구청의 무관심과 이익집단의 술수, 더 나아가 돈벌이에 급급한 주체세력의 모럴해저드가 빚어낸 ‘박자는 잘맞지만 잡음많은 LP음반’같단 생각이 든다.
# 조합원 추가부담금에 따른 안내문
조합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1992년 재개발 사업을 시작한 저희 전농4구역 재개발사업이 그 동안의 험난한 사업 추진 과정을 무사히 완료해 지난 7월 6일 준공검사를 마치고 오는 7월 20일부터 입주를 하게 됐습니다.
약 8년 이상이나 걸린 험난한 과정 속에서 다른 재개발사업에 비해 모범적이고 우수한 성과로 완수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조합원 여러분의 한결같은 성원과 관심이었다고 사료됩니다. 조합집행부와 시공사인 SK건설에서는 이에 깊은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재개발 사업의 추진과정에서 최선을 다하였음에도 예기치 않았던 소송이 발생하였고 IMF 영향으로 부동산 경기가 악화되어 상가도 미분양이 발생해 조합과 시공사 간에 약정한 공사비에서 약 94억 저오박 부족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이에 조합에서는 3차례의 조합원 총회를 개최하여 총회에서 “조합에서 소송비용 36억과 상가분양 손실 예측분 중 29억 총 65억원을 부담하되, 소송 및 상가분양의 결과에 과부족이 발생시에도 조합은 65억원만을 부담하고 나머지는 SK건설에서 책임진다”고 결의했습니다.
총회에서 결의하신대로 조합과 시공사는 합의서를 작성하여 공증까지 마쳤으므로 조합원 여러분은 더 이상의 추가 부담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이에 따라 조합원별 부담액은 타 재개발사례와 법원의 결정문에 의거, 24평A형: 4,101,000원, 24평B형: 4,145,000원, 33평A형: 5,590,000원, 33평B형: 5,583,000원, 42평: 7,231,000원으로 결정했고 해당 부담금은 평화은행 060-01-****-*** SK건설주식회사 명의 계좌에 입주전까지 입금해 주시기 바랍니다.
부담금을 납부하지 아니한 조합원은 입주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입주지정기간 이후에는 연체이율 17%를 적용한 연체이자가 발생하오니 이점 유념하시어 입주에 차질이 없도록 조치하시기 바랍니다.
조합 여러분의 현명한 판단에 따라 조합과 시공사는 부담금 문제 등 제반 문제를 원만히 해결했으므로 앞으로 저희 조합과 시공사에서는 조속한 업무 처리를 통해 분양처분 및 등기절차를 마치고 조합원 여러분의 재산권 행사에 지장이 없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조합원 여러분의 건강과 가정의 행운을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2000년 7월 15일.
시행자: 전농4구역주택재개발조합 조합장 직무대행 강신옥(변호사)
시공자: SK건설주식회사 대표이사 사장 문우행
※추가부담금과 관련한 문제의 안내문이다. 이영재씨는 “당시 조합총회 과반수이상 찬성을 통해 이 금액을 산정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상가 미분양이 될 것을 예측못한 것은 조합원의 실수였다”며 “그래서 이 문제를 조합총회를 통해 추가부담금을 지급키로 한 것”이라고 밝혔다.
SK에서는 이 아파트를 담당했던 부장이 이사로 승진할 만큼 큰 이득을 봤을 텐데(당시 2000년은 IMF로 인해 사회전반에 구조조정이라는 칼날이 휘몰아칠 때였다), 어찌해서 추가부담금을 갹출했을까.
# 전농SK아파트 일지
1997.3.10 착공
1998.10.15 총회에서 조합장 선거로 유수현 조합장 선출
1999.7.26 조합장직무집행정지 가처분 결정
2000.3.31 조합장 직무대행자 강신옥(변호사) 선임
2000.7.6 준공
2001.8.14 대의원회의 개최로 조합해산 결의
2001.9.6 청산인 등기(청산인대표: 이영재, 이영진)
2002.1.11 대법원 확정판결(조합장 당선자: 허경정)
2002.4.3 집단민원제기(김홍규외 47명)
고구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