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신 마음] 모든 인간은 완벽하게 불완전하다
정혜신 정신과 전문의
인사청문회에서의 여러 논란과는 별개로, 언론에 개각 대상자에 대한 하마평이 오르내릴 때부터 마음이 불편해지곤 한다. 사람에 대한 이상화 경향이 지나치다는 느낌 때문이다. 예상 후보자를 미화하는 17 대 1의 뚝방전설 같은 승리 에피소드는 그나마 애교스럽다. 후보자 신분으로 격상되면 대개가 전지전능에 가까운 인간형과 동일시된다. 비단 공적인 영역에만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우리 사회에는 사람에 대한 그런 관습적인 신화가 차고 넘친다.
인간의 속마음과 접하는 직업적인 경험이 많아질수록 사람에 대한 이상화가 얼마나 어리석고 불행한 일인지를 절감하게 된다. 사람들은 엄청난 부와 절대적 재능과 막강한 권력을 가진 대상들에 막연한 기대감과 신비감을 갖는 경우가 많다. ‘성공한 사람들은 뭐가 달라도 달라’ 하는 인식이 깔려 있다.
일본 여성팬들에게 배용준 같은 한류스타는 완전무결한 존재 그 자체다. 배용준이라는 한 인간의 실체와 일본 팬들의 인식 속에 있는 배용준은 같은 사람이 아니다.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투사하는 ‘환상 속의 그대’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모습을 자기 내면보다는 다른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하는 가운데 찾으려는 속성이 있다. 그러는 한편으로 누군가 자기에게 기대를 가지고 사랑해 주면 그런 기대에 부응하려고 최선을 다하게 되는 특성도 있다. 그러니 내가 이상화하고 있는 대상의 실체를 제대로 볼 수 없는 것은 물론 관습적으로 이상화의 대상이 되는 사람도 온전하게 ‘자기’를 유지하는 일이 불가능에 가까워진다. 그러다 보면 양자 모두 자기가 자기에게 속는 현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일종의 심리적 퇴행이다.
류현진이 박지성처럼 그라운드를 질주할 수 없고, 김연아가 박태환처럼 물살을 가를 수 없으며, 이승철이 이창호처럼 치밀하게 수를 읽을 수는 없다. 아무도 한 사람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게 당연하다.
그럼에도 심리적 퇴행의 상태에서는 그런 일이 실제로 가능하다고 착각한다. 거창하게 멀리 갈 것도 없다. 친척 모임에서 돈이나 사회적 지위가 있는 사람이 재테크뿐만 아니라 교육, 건강, 부부문제 모두에서 전방위적으로 센 말발을 가지게 되는 것도 같은 이유다. 특히 대한민국에서는 돈을 가진 사람의 후광이 모든 것을 압도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어떤 사람이 엄청난 부를 소유했다면, 성공한 사람은 모든 면에서 확실히 다르다는 속설을 바탕으로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상징화한다. 달라이라마에게 재테크 방법을 묻지는 않지만 우리나라 제일의 부자인 재벌 회장에게는 경제뿐 아니라 정치, 문화, 패션, 교육, 인간심리, 건강, 취미생활 등 모든 문제에 관해 공손하게 자문하고 경청하려는 태도가 충만하다. 누가 강제하지 않음에도 전지전능한 존재처럼 인식한다. 문제는 그런 태도를 주위 사람에게도 강요한다는 것이다. 함께 무릎 꿇고 그의 전지전능함에 경배하자고 압력을 가한다. 그러지 않으면 잘난 사람 뒷다리 잡는 삐딱이로 치부한다.
최고권력자의 자리에 있다고 최상의 판단력을 가진 것은 아니잖은가. 최고의 부자라는 이유로 도덕성까지 최고 수준일 것이라고 지레짐작하는 행위는 부당할뿐더러 어리석지 않은가. 동화의 나라도 아닌데, 영웅이나 위인의 담론이 무성한 사회는 퇴행적이다. 어떤 사람이 가진 재능, 권력, 부에 대해 영역별로 인식하고 인정하고 동의할 수 있어야 건강한 사회다. 누군가를 차범근과 조용필과 선동열을 합쳐놓은 인간형으로 인식하는 게 아니라 ‘너는 박지성이구나, 나는 김아무개야’ 식의 태도를 견지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모든 인간은 완벽하게 불완전한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바탕 위에서야 비로소 한 개별적 인간이 가진 재능과 매력과 잠재력과 한계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 우리의 일상에서 사람에 대한 호들갑이 현저하게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직업적 경험에 의하면 확실히 그렇다.
정혜신 정신과 전문의
기사등록 : 2010-09-01 오후 07: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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