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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nsibility/수필

어머니의 손(2003)

어머니의 손

오늘 오후, 얼마전 부업을 시작하신 어머니를 위해 이번 주내로 이메일 사용하는 법을 가르쳐 드리려 했다. 오늘 우연찮게 집에 있게 되서 컴퓨터 앞에 앉아 어머니에게 요목조목 컴퓨터에 대해 알려드렸다.

학원을 다니시겠다며 손을 내저으시던 어머니에게 다정하지는 않지만, 고만고만한 목소리로 난 말씀드렸다. 제가 가르쳐드리겠다고. 평소 살가운 말이 오가는 모자사이는 아니지만, 오늘은 대체로 그런 편이었다.

컴퓨터 전원을 켜고... 마우스를 잡고 모니터를 바라보며 포털사이트에 접속해 이메일을 등록했다. 그러던 순간, 난 뒤통수를 맞은 듯, 멍한 기분이 들었다.

바로 어머니의 손을 보게 된 것이다. 아직도 내 초등학교 때의 그 손과 얼굴을 지니고 계신다고 믿었던 것이 내 착각이었을까. 흘러간 세월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내 이기심이었을까.

키보드 자판을 두드리시던 어머니의 손을 보고 난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검게 그을린 손과 주름이, 예전에 살펴보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그래도 아직 남들은 어머니를 50대로 보지 않는다. 사촌형이 아기를 낳았을 때, '난 아직 할머니가 되기 싫어'라며 투정어린 말씀을 하시던 어머니인데...

키보드를 손가락 두개로 띄엄띄엄 두드리시는 어머니를 곁에서 지켜보면서 눈물이 나올 뻔 했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것...

물끄러미 내 손을 한번 봤다. 그리고 어머니의 손을 다시 살폈다.

"이거 이렇게 치면 되는 거야? 비밀번호 질문은 뭐냐... 또 저건 뭐고..."

난 말을 잇지 못했다.

늙어가시는 어머니를 난 인정하고 싶지 않다. 나만 훌쩍 커버리고 어머니는 그대로 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바보스럽게도 그 동안 난 하고 살았나 보다. 투정을 아직도 받아주시는 어머니는 내가 이런 느낌을 받았다는 것을 아실까.

다행스럽게도 어머니는 내 홈페이지를 모르신다. 이 글을 보면 난 아마도 매우 당황할 것이다. 이러한 느낌의, 이러한 글을 어머니께 드려본 적은 군 복무시절을 제외하면 거의 없다.

평소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했던 나. 사랑은 온갖 이성들에게만 쏟아부었던 무지한 인간이 바로 나라는 사실을 오늘 꽤 크게 깨달았다.

어머니의 주름진 손 하나를 보고 오늘이 2003년이고 1973년과는 이미 30년 차이가 난다는 사실을 온 몸으로 절실히 느꼈다. 그 때의 고운 사진이 아직도 어머니방 화장대에 놓여있다. 환하게 웃는 모습은 아직도 그대로신데, 손은 그렇지 않았다.

50대라는 나이. 이해할 순 없다. 내가 무얼 알겠는가. 그러나, 어머니의 손을 보며 난 조금 이해할 수 있을 듯도 했다. 한 평생을 자식 사랑으로 지내오셨을 그 손을 보며 말이다.
 
200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