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9년전 1993년 봄. 4월로 기억된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놀이공원은 각종 '꽃축제'로 1년 내내 손님을 유치하기 위해 열띤 경쟁을 벌였다. 봄에는 튤립, 장미, 가을에는 국화 등등...
나는 당시 자연농원(현 에버랜드)에 튤립 축제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기쁨 마음으로 친구들에게 알렸다.
"자연농원가자"
같은 학과 동기들과 어울려 자연농원으로 출발한 시각은 토요일 오전 10시. 자가용이라면 편하게 왕복 시간을 헤아리지 않고 다녀왔겠지만, 학생 신분인지라 버스 시간에 왕복 교통비까지 계산해가며 연신 떠들어댔다.
"와! 신난다. 나 자연농원, 첨이야."
"진짜? 촌놈"
"애들아 니들은?"
남자 셋, 여자 셋. 시트콤 제목도 아니고 무슨 꿍꿍이냐고 반문하겠지만, 당시 대학교 1학년 이었던 나는 마음맞는 동기 여섯을 묶어 매일 함께 밤거리를 낮거리 활보하 듯 쏘다녔다. 노래방이 처음으로 국내에 상륙하던 시절이었기에 우리의 안식처는 술집과 노래방이 전부였다. 그러던 와중에 봄기운 풀풀나는 교외에 나가니 자연스레 콧노래가 나올 수 밖에 없었다.
"맨날 술만 먹다 오랜만에 교외에 나가니 기분이 좋네"
"그러냐? 나도 좋구만"
자연농원에 도착해 처음으로 탔던 것이 독수리요새. 시속 200km미터는 족히 나올법한 스피드에 모두 질려버렸고, 롤러코스터로 다시 한번 심장 박동 수를 높였다. 회전 목마도 탔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그것은 정말이지... 배고픈 아이에게 밥 냄새만 맡게 해주는 것과 같았다.
놀이공원을 벗어나 튤립이 한창 무르익어가는 축제밭으로 갔다. 어찌나 아름답던지. 한눈에 그렇게 많은 꽃을 본 적이 없던 터라, 우리 여섯은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눌러댔다. 토요일이라서 그런가. 시간은 흘러흘러 어둑해졌을 무렵, 라디오 공개방송이 진행됐다.
우리 멤버 중의 한 명인 명자(가명.당시 20세. 여)가 당시 최고 인기가수 였던 김원준을 너무 좋아했다. 그런데 마침 김원준이 그 공개방송에 출연한다고 했고, 우린 밤바람을 맞으며, 나중에는 오돌오돌 떨어가며 김원준을 기다렸다.
"안나오나부다. 집에 가자. 늦었다. 벌써 9시 넘었어. 차 끊긴단 말야."
무슨 말이 오갔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밤이 깊어가고 있고 차가 끊길 것 같은 예감에 명자를 계속 설득했던 것 같다.
시간은 흘러 밤 10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우린 결국 공개방송의 농간에 놀아난 꼴로 정문을 향해 열심히 뛰었다. 막차가 엔진 소리를 내며 출발하려는 찰나, 우린 차 앞을 가로막고 올라섰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이 버스가 어디로 가는지 확인 안했던 것이 실수였다. 용인행. 서울행을 타야하는데, 용인행을 탔다. 용인에 도착하니 11시가 다돼가고 있었다. 20세의 여자 3명과 남자 3명이 밤 11시에 용인에서 뭘할 수 있을까.
여관을 잡을까 집에갈까. 10여분을 고민하다 수원역으로 향하는 버스를 보고 올라탔다. 수원역에 도착하니 거의 11시 30분. 부산에서 올라오는 기차가 있다는 말에 안도의 한숨을 쉬고, 서울역에 도착하니 12시가 넘었다.
여자 3명이 택시를 타지 않는 이상 외박을 하게 생겼다. 그러나, 당시 학생 신분에 집이 성남이었던 여자 아이들의 택시비는 있을 리 만무했다.
"우리 집으로 가자"
그렇게 해서 찾아간 순돌(가명.당시21세.남)이네 집은 이태원. 껄떡대며 치근대는 흑인들과 백인들의 꼬부랑 소리를 뒤로 하며 친구 집으로 들어서 우린 그렇게 '합방'을 했다.
아침에 6명 모두 부시시한 몰골로 일어나 식탁에 앉으니 순돌이 아버지의 말씀이 들려온다.
"니들 같이 잤냐? 다들? 6명이 같이 자기엔 좁았을 텐데..."
아직도 그 날 맡았던 튤립 향기가 가끔 생각난다.
나는 당시 자연농원(현 에버랜드)에 튤립 축제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기쁨 마음으로 친구들에게 알렸다.
"자연농원가자"
같은 학과 동기들과 어울려 자연농원으로 출발한 시각은 토요일 오전 10시. 자가용이라면 편하게 왕복 시간을 헤아리지 않고 다녀왔겠지만, 학생 신분인지라 버스 시간에 왕복 교통비까지 계산해가며 연신 떠들어댔다.
"와! 신난다. 나 자연농원, 첨이야."
"진짜? 촌놈"
"애들아 니들은?"
남자 셋, 여자 셋. 시트콤 제목도 아니고 무슨 꿍꿍이냐고 반문하겠지만, 당시 대학교 1학년 이었던 나는 마음맞는 동기 여섯을 묶어 매일 함께 밤거리를 낮거리 활보하 듯 쏘다녔다. 노래방이 처음으로 국내에 상륙하던 시절이었기에 우리의 안식처는 술집과 노래방이 전부였다. 그러던 와중에 봄기운 풀풀나는 교외에 나가니 자연스레 콧노래가 나올 수 밖에 없었다.
"맨날 술만 먹다 오랜만에 교외에 나가니 기분이 좋네"
"그러냐? 나도 좋구만"
자연농원에 도착해 처음으로 탔던 것이 독수리요새. 시속 200km미터는 족히 나올법한 스피드에 모두 질려버렸고, 롤러코스터로 다시 한번 심장 박동 수를 높였다. 회전 목마도 탔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그것은 정말이지... 배고픈 아이에게 밥 냄새만 맡게 해주는 것과 같았다.
놀이공원을 벗어나 튤립이 한창 무르익어가는 축제밭으로 갔다. 어찌나 아름답던지. 한눈에 그렇게 많은 꽃을 본 적이 없던 터라, 우리 여섯은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눌러댔다. 토요일이라서 그런가. 시간은 흘러흘러 어둑해졌을 무렵, 라디오 공개방송이 진행됐다.
우리 멤버 중의 한 명인 명자(가명.당시 20세. 여)가 당시 최고 인기가수 였던 김원준을 너무 좋아했다. 그런데 마침 김원준이 그 공개방송에 출연한다고 했고, 우린 밤바람을 맞으며, 나중에는 오돌오돌 떨어가며 김원준을 기다렸다.
"안나오나부다. 집에 가자. 늦었다. 벌써 9시 넘었어. 차 끊긴단 말야."
무슨 말이 오갔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밤이 깊어가고 있고 차가 끊길 것 같은 예감에 명자를 계속 설득했던 것 같다.
시간은 흘러 밤 10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우린 결국 공개방송의 농간에 놀아난 꼴로 정문을 향해 열심히 뛰었다. 막차가 엔진 소리를 내며 출발하려는 찰나, 우린 차 앞을 가로막고 올라섰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이 버스가 어디로 가는지 확인 안했던 것이 실수였다. 용인행. 서울행을 타야하는데, 용인행을 탔다. 용인에 도착하니 11시가 다돼가고 있었다. 20세의 여자 3명과 남자 3명이 밤 11시에 용인에서 뭘할 수 있을까.
여관을 잡을까 집에갈까. 10여분을 고민하다 수원역으로 향하는 버스를 보고 올라탔다. 수원역에 도착하니 거의 11시 30분. 부산에서 올라오는 기차가 있다는 말에 안도의 한숨을 쉬고, 서울역에 도착하니 12시가 넘었다.
여자 3명이 택시를 타지 않는 이상 외박을 하게 생겼다. 그러나, 당시 학생 신분에 집이 성남이었던 여자 아이들의 택시비는 있을 리 만무했다.
"우리 집으로 가자"
그렇게 해서 찾아간 순돌(가명.당시21세.남)이네 집은 이태원. 껄떡대며 치근대는 흑인들과 백인들의 꼬부랑 소리를 뒤로 하며 친구 집으로 들어서 우린 그렇게 '합방'을 했다.
아침에 6명 모두 부시시한 몰골로 일어나 식탁에 앉으니 순돌이 아버지의 말씀이 들려온다.
"니들 같이 잤냐? 다들? 6명이 같이 자기엔 좁았을 텐데..."
아직도 그 날 맡았던 튤립 향기가 가끔 생각난다.
2002.3
2002년 당시로부터 9년 전이었으니까, 지금으로부터 16년 전의 일이다.
아련하고 흐릿한 영상으로 가득한 기억의 한 조각들.
없이 못살았던 추억이 그저 그리움이 되었네.
그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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