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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nsibility/詩

그리움이라는 것

그리움이란 것.

그리움이란 그런 것입니다.

2년만에 먼지 훌훌 털어낸 헌책을 펴내 물방울 묻은 글자를 볼 때 느끼는,
습식저온사우나에서 물방울을 고개 들어 말없이 맞을 때 느끼는,
가시에 찔린 손가락을 그대로 두고 긴 세월 말없이 그 흔적만 종종 바라볼 때 느끼는,
서투른 걸음걸이로 뒤뚱거리며 걷는 어린 아이의 웃음에서도 느껴지는,
사랑하는 사람사이에서도 느낄 수 있는,
사랑하지 않는 사람 사이에서도 느낄 수 있는,
만원 지하철에서 오른손으로 손잡이를 잡았을 때 문득 왼손에 오래전 온기가 전해져 올때 느끼는,
우산 없이 걷다가 연인 끼리 우산 하나를 지탱해 걷는 모습을 볼 때 느끼는,
비오는 날 커피와 담배 연기 사이로 보이는,

느낌.

그 느낌이란 그런 것입니다.

생각없이 들어선 작은 카페에서 귀에 익숙한 노래가 흘러나올 때 느낌,
술에 취해 길을 나섰는데 주변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을 때 느낌,
파아란 하늘 아래 흰 구름 몇개가 흘러가는 것을 볼 때 느낌,
파아란 바다 가운데 흰 돗단배 몇개가 흘러가는 것을 볼 때 느낌,
그러한 바다를 두고 소리를 지를 때 느낌,

바로 그런 느낌.

이 세상에서 가장 유치한 감정이라는,
이 세상에서 가장 말로 할 수 없는 것이라는,
한순간에 말을 없앨 수 있고
한순간에 눈물을 짓게 만들 수 있는,

그리움, 그리고 사랑.

없어져야 하지만 영원히 없앨 수 없는 단어장
백지로 만들어 주길 원하지만
제대로 된 지우개 하나 없는,

그러한 세상
그리고 사랑.

바로 그리움이란 것입니다.

2003. 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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