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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nsibility/詩

나는 몰랐다

나는 몰랐다

어제 새로 산 카키색 면바지 끄트머리에
조그마한 구멍이 하나 보인다
무엇일까
취기오른 새벽녁 거리에서
엷은 눈동자로 바지를 끌던 홍등이 아른거린다
느즈막히 들어선 퇴근길에 만난 오뎅 국물은
하얀 스웨터를 물들였다
그러나,
입술 가득 빨간 고추장만 묻혔을 뿐,
남은 흔적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달빛을 받으며 눈 쌓인 언덕길에
총총히 박힌 할로겐이 곁눈질에 스치고
하얀 천으로 사방을 펼친 파라다이스는
이내,
얼굴을 덮는다

외마디 외침은 정녕 하늘로 올라간 걸까.

고요한 사방에서 울리는 건
모르는 사이 물들은 오뎅국물보다
얇게 뚫린 작은 바지 구멍보다

사랑의 외침이었다는 것을,

나는 정말 몰랐을까.


2003. 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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