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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nsibility/詩

어느날이었지

어느날이었지

어느날이었지. 그렇게 내게 한움쿰의 머리카락을 쥐어주고 떠났던 때가 어느날이었어. 사랑한다는 말대신 그 흔한 눈물도 흘리지 않고 조용히 곁을 떠났지. 그렇게 한없는 그리움만 남겨둔 채 멀리 가버렸던 어느날이었지.

어느날이었지. 투명한 유리창에 기댄 오후에 햇살 가득한 웃음으로 나를 반기던 손길을 받았던 때가 어느날이었어. 정말 행복했던 웃음으로 내 어두운 날들의 조각난 희망이나마 건질 수 있었지. 그렇게 한없는 사랑을 받았지.

어느날이었지. 조용하고 나긋한 목소리의 소유자는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라고 말해주던 때가 어느날이었어. 그 사람 나를 위해 목숨을 바칠 것처럼 연신 떠들며 찬 서리 맞으며 밤길을 걸어도 행복했었지. 그렇게 가득찬 사랑은 처음이었지.

어느날이었지. 검은 모래알을 본 후 우리는 보이지 않는 암흑으로 내달려 결국 소리치게 되었던 때가 있었어. 그건 두려움이었고, 가슴떨림이었지. 깨어질 사랑에 두려웠다기 보다는 남겨진 이별에 대한 서글픔이었지.

그렇게.

그렇게 어느날, 한 마디 한 마디에도 없는 나의 두 마디로 우리의 한 마음 한 마음은 두 조각 나버렸지. 사랑할 수 없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쥐고 한 없이 울던 나의 불행은 그 어느날 시작되었지.

2002.8.2
어느날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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